[월요논단]세상의 모든 고길동 아재들에게

[월요논단]세상의 모든 고길동 아재들에게
  • 입력 : 2017. 07.31(월) 00:00
  • 김혜림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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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영화 '둘리'의 고길동이 불쌍한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어른이 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어릴 때는 그저 귀엽고 불쌍한 둘리를 괴롭히는 악역이라고 생각했던 고길동이, 어느 날 보니 철없는 둘리를 아무 조건 없이 먹여주고 재워주며 직장을 다니는 평범한 우리의 아버지와 닮아 보이는 것이다.

이 평범한 우리의 50대 중장년층 가장과 닮아있는 고길동들이 요즘 위기다.

지난달 '대한민국 중장년의 일상에서의 행복'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50대 남성의 삶의 만족도가 17.2점으로 20대부터 60대까지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낮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20~30대 자녀를 두고 80대의 노부모를 모시는 평범한 이 시대의 50대 가장들은 취업난에 허덕이는 자녀와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동시에 부양해야 하는 무거운 어깨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삶의 안정기에 접어들어 자기 생활을 즐겨야 할 연령인 이들이 가장 불행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 세대는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서 있었다. 민주화 시대로 변화하는 초기 모습을 목격한 청년에서 성장해 IMF 시대를 견디고 위기의 직장생활을 견뎌왔다. 그리고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노부모를 부양하고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는 20~30대 내 새끼들의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 애타는 마음까지 안고 살아가고 있다.

어느 세대나 당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왔겠지만, 소위 '아재'들이라 불리는 이 세대의 삶은 팍팍하다. 은퇴 시기는 다가오고 가족 부양의 부담은 줄지 않는다. 더구나 바쁜 일상 때문에 가족과 소통할 시간이 많지 않아 가정불화가 생기거나 외로움을 겪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들 세대는 평생 자신의 자아를 실현해 보거나 자기계발에 시간을 투자한 경험이 대부분 없다고 한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조사에 의하면 50대 남성 우울증 환자가 전 연령대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자살자의 70% 이상이 남성이며 그중 절반이 45~60세 사이의 중년 남성이라고 한다.

은퇴 시기를 앞두고 경쟁에서도 밀리고 가정에서조차 소외당하는 중년 남성들이 많다. 이들은 이러한 스트레스를 대부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오래전부터 짊어져 온 가장이 가진 과도한 책임의식 때문에 나약함을 숨기는 것이 일상인 세대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것을 자연스럽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가 않은 우리의 고길동 아재들은 지속적인 절망감과 고립감에 빠지게 되고 우울증까지 겹쳐 극단적인 선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벼랑 끝에 홀로 선 이 위기의 고길동 아재들을 위해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따뜻함으로 감싸줘야 할 때다. 가장에게 집중된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감과 동시에 가족과의 갈등에 대한 부담을 나누고 이해하려는 주변 사람들의 배려도 중요하다. 또한 범국가적 대응도 절실하다. 우울증, 자살 예방 등 중년남성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더 탄탄히 구축해야 한다.

이들의 마지막 탈출구가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 이곳에서 치유받는 것이 되길 바란다. 이 불쌍한 고길동 아재가 지금 이 순간 나의 소중한 아버지, 아들, 남편일테니.

<김혜림 한국정보화진흥원 글로벌협력단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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