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1)프롤로그-제주섬 빛깔 일렁이는 창작물, 밖으로 처음 펼쳐보인 그곳

[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1)프롤로그-제주섬 빛깔 일렁이는 창작물, 밖으로 처음 펼쳐보인 그곳
문화공간 부재 한탄하던 제주… 지금은 인구 대비 최다
  • 입력 : 2017. 04.21(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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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민회관서 제주아트센터까지 제주예술 흐름 담겨
최근 도시화 속 빈 건물 등 활용한 창작공간 조성 늘어


제주아트센터

30년 전쯤만 해도 제주는 문화공간의 부재를 한탄하는 처지였다. 1980년대 들어 제주시에 전시공간이 생기고 서귀포에 미술관이 건립됐지만 이용자가 없고 운영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니 1988년 문을 연 제주도문예회관에 대한 지역 예술인들의 기대감이 어떠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어느 예술인은 제주도문예회관 조성을 일컬어 '제주도향토예술문화사의 획기적인 한 해로 치부해도 좋은 일'이라고 했다. 예총제주도지회(제주예총)가 제주도문예회관 개관 이전에 발간한 '제주문화예술백서'(1988)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다.

격세지감이다. 지난 2월 공개된 문화체육관광부의 '2016 전국 문화기반시설 실태조사' 결과 제주지역 문화기반시설은 공공도서관 21곳, 박물관 63곳, 미술관 19곳, 문예회관 3곳, 지방문화원 2곳, 문화의집 18곳이었다. 이를 인구 100만명당 문화시설 수로 환산하면 201.8곳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원도심거리예술제

미술관 등 제주도내 전시시설의 경우 2000년대 이후 크게 증가한다. 1980년대 2곳이던 미술관은 1990년 1곳 더 늘었고 2000년대엔 11곳이 새로 지어졌다. 2010년대에는 6개가 추가로 건립됐다. 별도의 공연장을 둔 문화시설은 1988년 제주도문예회관을 시작으로 90년대엔 제주해변공연장, 제주관광민속관(제주영상미디어센터 예술극장) 2곳이 세워졌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 관광지 공연장을 포함 9곳이 더 늘었다. 2010년대엔 제주아트센터, 서귀포 예술의전당 등 9곳이 개관한다.

제주시민회관

오늘날과 같은 미술관, 공연장 같은 전문 시설은 아니어도 다양한 형태의 문화공간이 제주예술과 함께 흘러왔다. 제주시 관덕정, 제주북초등학교, 제주시 칠성로 일대의 다방 등은 주로 1960~70년대 전시공간으로 활발하게 쓰였다. 전시장중엔 세종갤러리(세종미술관)처럼 한 시절을 화려하게 누볐다 사라진 공간이 적지 않다. 제주극장(현대극장), 제주시민회관, 서귀포시민회관 등은 문예회관 탄생 이전에 공연장 역할을 했다. 지금의 제주예술이 싹을 틔웠던 모습을 기억하는 공간들이다.

서귀포예술의전당

이즈음 제주지역 문화공간은 전형적인 공연·전시장과 다른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유명 건축가가 설계를 맡아 새 건물을 짓는 일 보다 원도심의 문닫은 점포나 농어촌 마을의 빈 집을 문화공간으로 바꿔놓는 작업이 증가하고 있는 점이다. 그것들은 갤러리, 소극장 같은 발표장만이 아니라 창작실로 변모하며 문화공간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옛 다방이 그러했듯 카페와 갤러리가 공존하는 시설이 꾸준히 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갇힌 공간이 아닌 열린 거리를 무대로 창작활동을 벌이는 이들도 있다.

문예회관

제주발전연구원이 지난해 1월 내놓은 '제주 문화예술의 섬 조성 전략' 연구보고서에는 문화예술 생태계 활성화 기반 조성 방안으로 제주도 소유의 유휴시설을 활용한 창작공간 마련을 제시했다. 서울문화재단이 잠실종합운동장과 빈 상가 등을 이용해 서울 곳곳에 창작공간을 운영하고 있듯 제주지역도 제주종합경기장, 읍면동 복지시설, 공유지 등 빈 공간과 빈 토지에 창작공간을 만들어 저렴하게 임대할 수 있다고 했다.

문화시설수가 늘어온 만큼 향유자도 증가했을까. 시설 증가에 비례해 관람객이 매년 늘고 있다는 조사(2015 제주 사회조사 및 사회지표)결과가 있지만 분야별로 차이가 난다. 제주문예재단의 '2013 제주도민 문화의식 조사'에서 최근 1년 동안 무용 관람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7.4%에 그쳤다. 같은 시기 전통예술 관람 경험자는 23.1%, 연극· 뮤지컬은 28.6%로 절반을 크게 밑돌았다. 그나마 미술, 사진, 서예, 공예, 디자인 등 전시예술을 관람했다고 답한 사람은 절반을 넘긴 55.1%였다.

그럼에도 지역 예술인들은 여전히 문화공간에 대한 갈증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가 2015년 12월 펴낸 '창작여건 개선을 위한 문화생태지도 구축사업 보고서'를 보면 설문에 참여한 시각예술 응답자들은 가장 필요한 지원으로 '창작기금과 수혜자 확대'에 이어 '발표지면과 공간 확대'를 꼽았다. 공연예술 분야 역시 '창작기금과 수혜자 확대', '공연시설 확대와 수준 개선' 순으로 답했다. 전통예술 분야 종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도내 공연 예술인들은 중·소극장 규모의 발표무대 만이 아니라 연습실 확충을 시급한 과제로 여긴다. 개인보다는 팀을 이뤄 작품을 준비해야 하는 무대예술 분야 종사자들은 제대로 된 연습실 한 곳만 있어도 극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예술인들이 요구하는 '공간 확대'를 좀 더 넓게 해석해야 할 듯 싶다.

문화공간은 창작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역할을 맡는다. 공연·전시 등 예술인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창구 중 하나가 바로 문화공간이다. 공간은 지역 예술인들이 빚어낸 여러 창작물이 관객들과 처음 만나는 과정을 지켜본다. 그 공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시절 제주예술의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에서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최근까지 문화공간의 특징 등을 통해 제주예술의 흐름을 짚으려 한다. 피란 예술인들이 제주예술계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 등을 고려해 한국전쟁 시기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예전과 같은 쓰임새는 잃었지만 아직까지 흔적이 남아있는 공간도 포함해 제주예술의 변천과정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현재 운영중인 공간의 경우엔 공립시설을 중심으로 지역과 얼마나 밀착되어 있는지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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