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물섬 제주, 우리는 왜 이들을 외면하는가 - (4) 구상나무 세계에 알린 '윌슨'

[기획]보물섬 제주, 우리는 왜 이들을 외면하는가 - (4) 구상나무 세계에 알린 '윌슨'
1920년 구상나무 한국특산 신종 발표
  • 입력 : 2016. 03.04(금) 00:00
  • 강시영 기자 syka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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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쿠시마에 있는 삼나무 '윌슨 그루터기'. 강경민기자

미국 아놀드식물원에 당시 표본서 종자 육성한 거목 남아
일본 세계자연유산 야쿠시마엔 윌슨공원 조성 스토리텔링


세계자연유산 등 국제보호지역인 한라산에서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는 제주조릿대 확산과 더불어 구상나무의 쇠퇴 현상이다. 구상나무가 1920년 외국의 한 식물분류학자에 의해 전 세계에서 제주도 한라산과 한반도 남부 지방 일부에만 자라는 한국의 특산식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주인공이 어네스트 윌슨(1876~1930)이다. 윌슨은 영국 태생의 식물 채집가 겸 식물분류학자이다. 그는 주로 동양의 식물을 연구한 몇 안되는 서양학자로서, 특히 경제적 가치가 높은 목본식물 위주로 채집하거나 연구한 사람이다.

구상나무의 명명자 윌슨. 사진=김찬수 박사 제공

그는 영국 왕립 큐식물원에 소속돼 있으면서 1899년부터 주로 중국의 식물을 많이 수집했다. 1907년부터는 미국 하버드대학의 지원으로 주로 일본, 한국, 대만의 식물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1917년에는 한국의 식물을 많이 연구했는데, 제주도에는 10월 하순에서 11월 중순까지 탐사했다. 이 때 처음으로 구상나무를 만났으며, 한라산에서 채집한 구상나무를 기준표본으로 1920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이곳에 분포하고 있는 특산식물임을 밝혀 '아비에스 코리아나'라는 학명으로 아놀드식물원 연구보고 1권 3호에 신종으로 발표한다. 현재 아놀드 식물원에는 기준표본의 종자에서 육종된 구상나무가 자라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펴낸 '한라산 구상나무'(2015)에 따르면 그 이전 구상나무가 처음으로 전문가에게 발견된 것은 1907년 프랑스인 선교사 포리와 타케 신부에 의해서였다. 그 후 1909년 타케 신부는 다시 한라산과 지리산에서 구상나무를 수집하게 되었으나, 이 때 만들어진 표본은 윌슨 이전까지 감정되지 않았다. 윌슨이 명명한 구상나무의 학명은 '한국 전나무'라는 뜻이다. 그는 신종 기재문에서 구상나무를 한국의 식물상에 가장 흥미로운 종 중 하나라고 기록했다.

한라일보 취재팀은 지난해 4월 일본의 첫 세계자연유산 등재지인 야쿠시마를 찾았다. 일반적인 삼나무의 수명은 최대 800년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야쿠시마에서는 수령 1000년 이상 최대 3000년 이상의 삼나무가 분포한다. 현지에서는 수령 1000년 이상의 삼나무를 '야쿠스기', 1000년 미만은 '고스기(小衫, 어린삼나무)'로 불린다. 3000년에 이르는 야쿠스기를 포함한 원시적인 천연의 숲은 야쿠시마의 보물과도 같다.

일본이 자랑하는 야쿠시마에서 방문객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윌슨의 흔적이다. 윌슨은 세계에 야쿠시마를 소개한 대표적 인물로 전해진다. 그는 제주에 오기 몇해 전인 1914년 2월 17일 벚나무, 진달래, 침엽수를 조사하기 위해 일본을 찾았는데, 첫발을 내디딘 곳이 바로 야쿠시마였다.

윌슨이 한라산에서 채집한 표본의 종자에서 육성한 구상나무가 현재 미국 아놀드식물원에 거목으로 자라 있다. 사진=김찬수 박사 제공

안내인과 함께 야쿠시마 산 속 깊은 곳에 들어간 윌슨은 삼나무 계곡에서 폭우를 만났다. 숲을 헤매다 우연히 '동굴'을 발견하고 비를 피했는데, 그 '동굴'은 바로 거대한 삼나무 그루터기였다. 이 거대한 야쿠스기(야쿠시마 삼나무)가 바로 '윌슨 그루터기'로 명명돼 세계에 소개되고 있다. 기막힌 스토리텔링의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야쿠시마는 해변 항만 인근에 윌슨 박사를 기리는 공원을 조성해 기념비와 윌슨 그루터기 모형을 설치, 자원화하고 있다. 기념비에는 '윌슨 그루터기는 야쿠시마의 상징이 돼 관광, 학술적으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에 비를 건립해 윌슨 박사에 대한 경의와 친애를 표한다'고 적었다.

하지만 한라산 생태계와 경관을 대표하는 구상나무를 신종으로 기재하고 세상에 처음 알린 윌슨을 기념하고 문화자원화 하기위한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다.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르거나 아이디어의 부재를 나무랄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래서 일본 야쿠시마의 '윌슨 그루터기' 공원과 스토리텔링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시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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