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당굿 기록](8)추자도의 당제

[제주당굿 기록](8)추자도의 당제
"조상님 잘 모신 덕택으로 지금껏 먹고 살아요"
  • 입력 : 2013. 04.25(목) 00:00
  • 김명선 기자 nonamewind@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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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도는 조상 섬김이 남다른데 제사와 차례를 이틀간 지내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3년간 정월대보름에도 상을 따로 차려 제사를 지낸다. 현재 추자도에서는 제주처럼 당굿이 집전되지 않고, 음력 2월에 대서리 최영장군 사당, 영흥리 처사각, 묵리 처녀당 등지에서 당제만 지내고 있다. 사진은 대서리 주민들이 정월대보름날 줄다리기 하는 모습. 김명선기자

추자도 42개의 유·무인도를 합친 보물섬 군도
정월대보름 한바탕 축제 벌어지고 당제도 지내


섬속의 섬 추자도는 제주에서 배를 타고 1~2시간 이상을 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한반도와 제주도 중간에 위치해 있어 어업전지기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곳이다. 전체 인구의 90%가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추자초등학교 뒤편에는 최영장군 사당이 있는데 묵호의 난 진압을 위해 제주에 왔다가 풍랑으로 추자도에 머물며 섬 사람들에게 어강편법을 가르쳐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도록 도왔다고 해 어민들이 매년 정성스레 재물을 올리고 풍어와 무사안녕을 기원한다. 현재 추자도에는 제주처럼 당굿을 진행하는 곳은 없지만 정월대보름에 맞춰 당제가 집전되고 있다. 예전에 비해 규모면이나 제례가 상당히 축소되었다.

▶추자도=추자도는 상·하추자도, 추포·횡간도 등 4개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를 합쳐 42개의 군도로 형성되어 있다. 1946년 전라남도에서 제주도가 분리되었지만 말씨나 풍습에서 호남다움이 엿보이는 섬이다. 제주와 전라 문화의 '점이지대'가 된 만큼 연혁과 유래도 복잡하다. 추자도는 고려 때 탐라현, 조선 초에는 제주목에 속했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전남 영암군 땅이었다가 1884년 제주목으로 재편됐다. 1894년 해남현 관할이 되었다가 두 해 뒤에는 완도군에 편입됐다. 이후 1914년 제주군에 이속되었다.

추자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사 1258(고종45)년 송길유의 유배 대목이다. 태조실록에 '추자도(楸子島)'가 나오고, 세종실록에는 '주자도(舟子島)'라고도 기록돼 있다. 대개 추자의 유래를 "가래나무 열매가 바둑알 처럼 놓여 있는 곳"으로 풀이하고 있다.

▲추자도에 정월대보름이 찾아오면 마을마다 한바탕 축제가 벌어지는데 집집마다 조상들을 위한 제사상을 차려 제를 지내기도 한다. 신양리에서는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등을 즐기고 대서리는 헌석굿과 함께 줄다리기도 함께 한다. 김명선기자

▶"설 보다 더 큰 명절 정월대보름"=추자도에서는 명절 차례를 저녁에 지낸다고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시절 설·정월대보름·추석 등의 명절에도 남자들은 바다에 나가 일했고, 아버지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차례를 지내던 습관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추자도는 설 보다 정월대보름 차례를 더 크게 지낸단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뭍으로 나갔던 가족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차례를 지내는데,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3일간 온 섬이 축제장으로 변한다.

이정호 추자수협 조합장은 "설에는 간단히 차례만 지내지만 정월대보름에는 조상을 모시기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제물은 모두 준비한다. 마을 전체가 모여 줄다리기 시합도 하고 차례 음식을 골고루 나눠먹었다"며 "정월대보름에 마을 풍물패가 집집마다 돌면서 무사안녕을 기원하고, 한 곳에 모여 바다에서 돌아가신 조상들을 위해 헌석굿도 집전한다"고 설명했다.

추자도 대서리에서 정월대보름날 마을 주민 전체가 모여 풍물패를 앞세우고 줄다리기를 한다. 줄다리기는 남성과 여성팀으로 나뉘어 경기를 하는데, 경기결과에 따라 한해 풍어와 무사안녕이 결정된단다. 그래서 줄다리기는 항상 여성이 승리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마을에 젊은여성들의 수가 적다 보니 남여가 혼합해서 시합을 벌인다.

신양리에서 대보름 하루전날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등의 민속놀이를 마을주민 전체가 즐기면서 풍어와 무사안녕을 기원한다.

추자도에서는 제사를 이틀간 지낸다. 저녁에 제를 지내고 다음날까지 철상하지 않은 채 놓아둔다. 특히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간 정월대보름에도 제사상을 차리고 제를 지낸다.

▶묵리 처녀당, 영흥리 처사각, 최영장군 사당=아주 오랜 옛날 제주에서 추자도로 해녀들이 물질을 왔을 때 아기를 돌봐줄 처녀를 같이 데려왔는데 불의의 사고로 죽게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묵리 마을에서는 그 죽은 처녀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당을 짓게 되었으며,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 제관을 정해 당제를 지내고 있다.

추자도 영흥리에는 처사 박인택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사당이 있는데 이를 추자 처사각(제주유형문화재 제9호)이라 한다. 박인택은 추자도에 사는 태인 박씨의 입도선조로 조선 중기 추자도에 유배와서 불교적 생활을 하며 주민들의 병을 치료해 주고 불교교리를 가르치면서 살았다고 한다. 처사각의 정확한 건립연도는 알 수 없으나 애초 마을내에 소규모 주택가에 초가집으로 건립되어 제를 지내오다가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상추자 대서리 엄바우 마루에는 1972년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된 최영(1316∼1388)장군 사당이 있다. 제주도로 묵호의 난을 진압키 위해 가다가 바람을 피해 추자에 하루 머물렀던 최영은 고기 잡는 법을 주민들에게 알려주었다. 이후 추자도 주민들의 삶이 조금 더 나아지면서 매년 어민들이 택일을 해 당제를 지내고 있다.

이상은 각각 처녀당·처사당·최영장군 사당제를 지낸게 된 배경이다. 추자도에는 이 외에도 마을마다 당이 존재하고 있으나 현재는 당을 찾아 제를 지내는 이가 거의 없다.

이처럼 추자도에서는 한이 맺혀 죽은 사람, 벼슬아치, 장군은 신(神)으로 모셔진다. 주민들은 해마다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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