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3연타석 홈런

[하루를 시작하며]3연타석 홈런
  • 입력 : 2012. 10.04(목)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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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은, 3연타석 홈런을 날린 것이니… 기고만장하였으리라. 브이(V)자 치켜들고 길길이 날뛰며 환호하며 아- 감격의 눈물도 흘렸으리라.

O형, 드물게 세 개의 대형 태풍이 잇달아 휩쓸고 간, 올 들녘의 가을은 이다지도 황량합니다. 스산한 바람 불고 어데 까마귀 울음마저 들릴 듯합니다. 첫 태풍의 피해복구를 마저 하기도 전에, 두 번째가 들이닥쳤고, 겨우 일손을 구해 그 복구를 바듯이 마칠 즈음 기어이, 그 세 번째가 작정하고 몰아친 것이지요. 출하를 앞둔 감귤 하우스가 무참히 날아가고, 애지중지 키우던 나무들이 뽑히고 꺾이고 뿌리 채 흔들리는 판국에, 여린 새순들의 안부야 물어 무엇 하겠습니까?

그게 어디 이 들녘뿐이던가요? 추석에 대려고, 한 알 한 알 정성으로 싸놓은 사과 배 복숭아들이 추풍낙엽으로 널브러진 현장을 보면서, 모두 걸고 몇 년을 다 바친 양식장 전복 등의 떼죽음을 보면서, 흔적도 없이 떠내려 간 농경지의 망연자실한 노농(老農)을 보면서… "나도 태풍피해를 입었네" 하고 덩달아 나서기가 좀 거시기 하였습니다.

O형, 어쩌면 이것은 연례행사입니다. 해마다 걱정하고 나름대로 준비하건만, 결과는 늘 이쯤입니다. 더욱이 피해를 입은 농어가나 그 산 번지 주민들은 하나같이 어려운, 사연 많은 사람들이지요. 그러기에 안타까움이 더한 것입니다. "일은 사람이 하고 이루기는 하늘이 한다(某事在人 成事在天)"던 삼국지 그 제갈공명의 장탄식을 여기 인용해도 될는지요?

O형, 어찌된 게, 세상은 인간을 죽이고 그 인간이 애써 이뤄놓은 모든 것들을 파괴하려는 데만 혈안이 돼 있습니다. 그것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아직 미미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지요. 그럼 인간과 그 재산을 보호하는 방법이 무어냐? 아마도 그중의 시급한 하나가 '태풍을 없애는 일'일 것입니다. O형, 작금의 첨단기술로도 태풍은 과연 어쩔 수 없는 존재일까요? 지금은 인공으로 비를 오게 하고, 눈도 내리게 하는 세상입니다. 이미, 하늘의 영역을 침범한지 오래인 세상인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태풍을 없앨 수는 없겠는가 하는 말이지요.

태풍을 아예 없애버릴 수 있다면 최선이고, 여의치 못할 경우 그것을 억제하거나 적어도 약화시키는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중 하나라도 성공한다면, 해마다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이 지구상의 숱한 태풍과 그에 수반되는 홍수, 그로 인한 수많은 인명과 엄청난 재산피해를 막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비로소, 그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O형, 이런 와중에도 시간은 유예 없이 흘러, 깊은 가을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시험지를 제출해야 할 시간이 다 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내키거나 아니거나, 반타작이거나 쭉정이거나 간에 어차피 올 시즌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입니다.

곰곰 돌아보면 O형, 그래도 "이만하기가 다행"이라고 생각 들 때가 있습니다. 사람 다치지 않은 것, 더 큰 변을 당하지 않은 것, 그만도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이오.

어쨌거나 이제, 지난 일들을 긍정하고 수용하고 마음 가다듬어야 할 때입니다. 언제 우리가 호강하면서 살았습니까? 늘 어려운 경우였잖아요. 애초 둬 마지기 돌밭에 귤나무를 심고 키울 적에, 우리는 그 나무들보다 더 목마르고 고달픈 여정 아니었나요? 굶주려도 오롯이 희망 하날 보듬고 그 먼, 현기증 나는 고갯길을 등짐에 넘나들었던 것 아니었습니까? 우리는 그 숱한 어려움을 이겨낸, 가히 토종 스타일입니다. 이만한 고비쯤사 거뜬히 넘어야지요.

O형, 기회는 다시 올 것이기에,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그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기에, 지금은 차분히, 경건하게 내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처럼요. <강문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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