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우의 한라칼럼] 족제비 때문에 돌아본 자연

[송창우의 한라칼럼] 족제비 때문에 돌아본 자연
  • 입력 : 2021. 06.15(화)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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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햇볕이 따갑다. 일상처럼 다가온 코로나19도 두 번째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가로수로 심어진 왕벚나무는 진녹색 이파리로 하늘을 가리며 그 크기만큼이나 넓은 그늘을 만들었다. 잎사귀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에 작은 검붉은 버찌가 반짝거리고 익은 열매가 떨어져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고 있다. 봄의 흔적이다. 이파리보다 먼저 찬란하게 피어났던 꽃은 벌과 벌레, 태양과 비바람의 도움으로 수정이 이뤄져 그 결실이 맺힌 것이다. 그때도 거리에 나풀거리는 꽃눈으로 거리에 내려앉자 오가는 사람들의 발아래 있었다. 벚꽃이 피었던 봄날이었는지 아니면 그 이전 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날 새벽 밭에서 족제비를 본적이 있다. 비바람을 막고 잠시 쉬는 공간으로 허술하게 지은 천막에서 빠져나와 돌담 사이로 재빠르게 사라졌다. 잠깐이지만 누런 황금빛이 감도는 잘생긴 녀석이었다. 신기한 것을 본 좋은 기분으로 천막을 열고 들어가 보니 그 녀석의 발자국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족제비가 다녀간 자리를 보자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 후배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도심과 가깝지만 숲이 잘 보존된 부근 농장에서 하귤과 토종복숭아를 심어 닭과 오리를 키우고 있다. 전업농이 아닌 그는 어느 날인가 닭과 오리들에게 먹이를 주러갔다가 병아리 몇 마리가 사라지거나 죽은 것을 목격했다. 그 전에 족제비가 다니던 것을 봤던 터라 그날로 쥐덫을 설치했다. 쥐덫으로 족제비 몇 마리를 잡고 나니 족제비가 다니지 않았다. 족제비가 사라지자 닭들이 알을 낳고 자유롭게(울타리에 갇힌 닭이 얼마나 자유로울까 마는) 돌아다닐 줄 알았으나 계란을 노린 뱀들이 나타났다. 구렁이었다고 한다. 닭들도 저항하려고 했을 것이지만 계란을 삼키고 있는 뱀을 어쩔 수 없었을 것이었으리라. 성질난 후배는 다시 뱀들을 없앴다. 족제비와 뱀이 사라진 농장은 평화를 찾는 듯 했으나 이제는 쥐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닭장을 휘젓고 다니고 있다. 쥐덫을 놓아 쥐 몇 마리를 잡아도 그들은 사라지지 않아 지금도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그의 말을 상기해보니 그동안 천막 안 여기저기 배설하고 어지럽히던 쥐들이 보이지 않았다. 나 역시 후배의 말이 아니었다면 족제비와 연결된 우리 인간들의 행태를 생각할 수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연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족제비와 뱀과 쥐, 벚꽃과 벌과 열매, 태양과 바람과 비, 인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과 만질 수 없는 것까지 모두가 연결돼 있는 것이다. 현재 이 엄중한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 역시 인간은 자연을 우리와 분리된 정복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돈'이라는 신이 우리 주변을 맴돌며 사람들을 탐욕으로 눈을 멀게 하고 있다. 따라서 가진 사람은 더욱 배불리 살고 갖지 못한 사람들은 더욱 힘들어지는 양극화 현상은 더 심화되고 있으니 참담하다. 자연과 함께 하지 못하면 우리는 물론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지만 미래의 주인인 우리 후손들은 힘들어질 것이다. 벚나무와 족제비를 이야기하다가 너무 멀리 왔다. 그래도 족제비 이야기를 전해준 후배 때문에 주위에 있는 사람과 자연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었다. <송창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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