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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觀] 가능한 변화들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입력 : 2021. 06.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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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파더'.

많은 대화에서 백신이 화두가 되는 요즘이다. 또래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너희 부모님 백신 맞으셨니 어떠시니'를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그럴 나이가 된 것이다. 나는 나이 마흔이 넘었는데도 부모님과 함께 사는 미혼의 남성이다. 드문 경우이긴 한데 그렇게 됐다. 마흔이 돼 갑자기 몸이 아파졌고 독립생활 2년 여 만에 다시 병원을 거쳐 부모님의 동거인이 됐다. 다행히 올해 초부터 건강이 회복돼 홀로 사는 나의 집과 함께 사는 부모님 집을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긴 하지만 다시 혼자서 살 자신도 생각도 없어져 버렸다. 그 이유는 내가 부모님과 함께 늙어간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어서다. 아버지가 밭일을 하고 어머니가 집안일을 할 때 나는 그저 거드는 정도인데 곁에서 거드는 시간이 거듭되다 보니 조금 더 자세히 그들의 변화를 볼 수 있게 됐다. 자연스레 나오는 아이고 하는 흔한 곡 소리, 골골 대며 잠을 잔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밤의 소리, 끙 하고 몸을 일으키고 누이는 파열음을 닮은 의태어. 그 소리들로 나는 매일 실감한다. 내가 조금씩 몸이 회복되어 가는 사이 부모님은 조금씩 더 빠르게 늙음을 향해 가고 있고 그 소리들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크게 도움이 되지는 못하지만 부모님의 곁에서 거드는 편을 선택하기로 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85세의 대배우 안소니 홉킨스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더 파더'는 치매 환자가 되어버린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바라보는 다 큰 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극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치매 환자인 당사자의 시점에서 진행되는데 덕분에 망각의 공포가 정말로 생생하게 전달되는 작품이다. 관객에게는 마치 미스터리 장르물로도 보일 수 있는 이 구성은 모든 것이 뒤엉켜버린 이의 절망을 보는 이의 턱 밑까지 들이민다. 내가 아는 당신도 당신이 아는 나도 당신이 아는 당신도 없는 순간이 영화 내내 반복된다. 이 영화의 후반부쯤에서 나는 몸도 마음도 거의 탈진해 버릴 정도였다.

내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을 때 간호사 분이 해주었던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중환자실에서 가장 힘든 환자는 정신이 멀쩡한 환자에요.' 정말로 그랬다. 곳곳에서 나오는 비명과 울음 소리,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몸의 감각들이 여실이 느껴질 때 몸보다 마음이 먼저 나락으로 떨어졌다. '더 파더'의 안소니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맵시 있게 옷가지를 챙겨 입는 단정한 노인이고 오페라 음악을 헤드폰을 끼고 듣는 조심스러운 애호가다. 그가 사는 집은 아름답고 쾌적하며 그의 자식은 사려 깊고 친절하다. 누가 봐도 부러울 수 있는 노년에게 치매란, 무엇으로도 대비할 수 없는 재난에 가깝다. 닥쳐버린 재난을 수습하는 일 또한 어렵고 고되다. 유한한 우리의 삶이 얼마나 불가해한지를 보여주는 '더 파더'에는 정답도 기적도 없다. 다만 스스로의 위엄을 지키는 일이,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대화인지를 보여준다.

암으로 투병했던 자신의 일상을 덤덤하게 써 내려간 이화열 작가의 책 '지지 않는 하루'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만약 세월이 앗아가는 것들에 대한 대가로 사물과 존재의 불완전함을 수용하는 너그러움을 준다면 그건 꽤 공평한 거래 같다.'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나 또한 그 절망의 초입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우리 모두는 기쁨과 슬픔, 분노와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게 태어났다. 반가워 와락 끌어안는 기쁨이 아닌 다른 감정들이 다가올 때에도 부디 준비돼 있는 사람일 수 있기를 연습한다.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열려버릴 생의 마지막 문 앞에서 뒷걸음질치고 싶지는 않다. 그런 변화가 가능하기를, 죽음 또한 삶만큼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이가 되길 스스로에게 바란다.

<진명현 독립영화스튜디오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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