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니 지인들 부모님의 부고를 받아보는 것이 일상화됐다. 그런 와중에, 눈에 띄는 소식은 지인들 자녀의 결혼 소식이다.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의 자녀 결혼 소식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어설프게 세상을 알아가던 시절을 함께 보내고,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고, 비슷한 시기에 자녀를 갖게 돼, 초보 부모로서 처음으로 자식을 키워보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살아왔다. 이제 그렇게 자란 자녀들이 내가 섰던 결혼식장에 서고, 나는 나의 부모님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서 그들의 결혼식을 지켜본다.
이런 상황의 심경을 잘 표현한 노래가 '지붕 위의 바이올린'(1971)이라는 뮤지컬 영화의 노래 '해는 뜨고 해는 지고'다. 차르가 통치하던 러시아 시절, 우크라이나 지역의 어느 유대인 마을을 배경으로 3명의 딸을 둔 우유 장수 테비에는 자신의 큰 딸 사이텔을 정육점 홀아비에게 시집보내려 하나 큰 딸은 가난한 재단사 청년을 선택한다. 전통을 중요시하던 테비에는 중매결혼이 아닌 연애결혼을 택한 딸의 결정을 시대가 변해감을 느끼며 수용한다. 그들의 결혼식 날 유대교 의식이 치러지고, 딸의 결혼을 지켜보는 테비에 부부의 마음이 노래로 표현된다.
하얀 웨딩 드레스의 저 여인이 내가 품에 안아 키우던 어린 소녀인가, 양복을 입은 신랑은 그 옛날 장난꾸러기 어린 소년이란 말인가. 내가 늙어가는 것을 의식하지 않았었는데, 어느덧 자식들이 결혼할 정도로 세월이 지났단 말인가. 몇십 년 전에 내가 서 있던 자리에 이제 장성한 신랑 신부가 서 있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처럼 세월은 바람처럼 날아가고 기쁨과 눈물을 준다.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충고가 있을까? 나도 처음이었는데. 이제 이들은 서로에게서 배우면서 하루하루 살아가야 한다.
자녀의 결혼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을 이렇게 잘 표현한 노래도 없다. 요즘 신랑 신부들은 예전의 우리와 달리 너무나 자연스러운 듯한데, 그래도 그들도 결혼식장에 서 있는 자신들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질까. 신랑 신부의 어머니에게서는 일종의 훈장을 단 듯한 성취감과 자신감이 보인다. 수면 부족에 시달리며 젖을 먹여 키워낸 자식들이 이렇게 결혼식을 올리는 자리까지 왔다는 것이 하나의 훈장이나 다름없다. 자기 결혼식의 추억이 있기에, 자녀의 결혼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감정은 더욱 복잡하다. 나의 부모들도 이런 감정이었을까?
요즘 결혼식의 풍습도 바뀌어서, 주례가 없는 대신에 신부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시간이 생겨났다. 나는 저들에게 무슨 말을 들려줄 수 있을까? 결혼이 선택 조건이 된 요즘에 좀 더 오래 산 사람으로서 느낀 점은 서로 의지하고 인생을 함께 할 배우자는 있어야 하겠다는 점이다. 추운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이 뮤지컬은 겨울과 크리스마스 시즌에 따뜻함을 전해준다. <김정호 경희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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