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 제주 원풍경을 되살린다](15)한림읍 명월리 '팽림월대'

['경술국치 100년' 제주 원풍경을 되살린다](15)한림읍 명월리 '팽림월대'
마을 재해 막고 선비들이 풍류 즐기던 곳
  • 입력 : 2009. 08.03(월) 00:00
  • 강문규 기자 mgkang@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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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읍 명월리 계곡에 자리잡은 명월대는 선비들이 시문을 읽으며 풍류를 즐겼던 곳이다. 1930년 축조된 이 유적은 사라져가는 민족문화와 마을의 옛 자취를 되살리기 위한 정신이 깃들어 있다. /그림=강부언

일제강점기와 4·3 겪으며 점차 쇠퇴

전통문화와 얼 지키려던 자취 '뚜렷'



명월리(明月里)는 제주시 한림읍에 속한 마을이다. 겉으로는 제주의 여느 중산간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마을이 간직한 오랜 역사와 옛 선비들의 풍류공간 등을 들여다 보노라면 그 속에 제주의 소중한 이야기들이 널려 있음을 느끼게 된다.

명월은 고려시대 16군현의 하나인 명월현으로, 조선시대는 도내에 설치됐던 9진(九鎭) 중 가장 규모가 컸던 명월진성의 소재지였다. 한말인 1879년에는 구우면(舊右面; 현재의 한림읍과 한경면지역)의 면소재지로써 제주도 서북부지역의 중심지로서 당시 면사무소는 명월진성 내에 있었다고 전한다. 명월리는 현재의 상동·중동·하동을 중심으로 인접한 주변마을을 포함한 거대마을이었다. 그러나 세월에 따라 금악리(1623년), 옹포리(1732년), 동명리(1777년), 상명리(1881년)가 각각 명월에서 분리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쇠퇴를 가져 온 결정적인 요인은 일제강점기에 본격화 됐다. 해안 신작로의 개통과 더불어 각종 상업, 교육, 교통시설 등이 해안으로 몰리게 되면서 서북부중심지로서의 역할과 위상은 점차 한림으로 자리를 넘기게 된 것이다. 더구나 수백년 역사의 상징이었던 명월진이 일제강점기에 폐치되었고, 진성(鎭城)의 돌담들은 한림항 축조의 석재로 투입되면서 성의 일부만 남긴채 허망하게 사라져 갔다. 그 당시 일제는 명월진성은 물론 제주읍의 주성(州城)과 이웃인 애월진성도 해안포구 매립용으로 허물어버렸다. 이같은 조치는 겉으로는 개발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일제강점을 공고히 하기 위한 조치였다. 먼저 읍성과 진을 폐치함으로써 그 곳에 남아 있는 군사들과 무기고 등과 같은 무력저항의 근거를 없애 나갔던 것이다.

▲명월대는 계곡 한쪽에 세워진 누대로 풍수사상에 의한 우주의 심오한 원리를 조형화하고 있다. /사진=강희만기자 hmkang@hallailbo.co.kr

명월리의 시련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4·3의 광풍'이 이 마을에도 불어닥친 것이다. 1948년 11월 20일 중산간 마을에 소개령이 내려진 뒤 상동과 중동 주민들은 모두 바닷가 하동으로 소개됐다. 이어 군경토벌대는 당시 약 230호였던 명월리 중 하동을 제외한 상동과 중동의 가옥 전부를 불태워 버렸다. 이 방화로 과거 제주도 서북부 중심지로서 수백년 동안 형성되었던 온갖 전통가옥과 서책들이 일시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명월리는 물론 제주의 큰 아픔이자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명월리에는 아직도 곳곳에 역사의 자취가 남아 있다. '명월리지(2003)

'에는 명월방어소, 명월방호소, 명월성, 명월진 객사터, 명월진 군기고터, 명월진 창(倉)터, 명월포 수전소와 같은 범상치 않은 지명들이 등장한다. 또 오랜 풍상을 겪은 팽나무군락과 계곡 한켠에 오롯이 남아 있는 명월대에서 우리는 명월리와 마을주민들이 간직하고 있는 뿌리깊은 전통과 긍지를 읽어내게 된다.

명월대는 지금은 폐교가 된 명월국민학교 앞 건남천 벼랑에 축조된 사각형의 누대이다. 이러한 월대는 제주에는 극히 보기 드문 유적이다. 사철 흐르는 물과 주변 풍광이 빼어나야 하고, 무엇보다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선비들이 포진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명월대도 그런 계곡의 울창한 거목과 기암절벽, 그리고 풍월을 읊는 선비들이 적지 않았기에 만들어진 누대인 것이다. 명월대 위쪽 엉기정(암석)에서 나오는 석간수는 옛부터 '일강정 이명월수(一江汀 二明月水)'라고 할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지금은 강우시에만 물이 흐르는 건천으로 변했다. 명월대는 가로 4.9m, 세로 4.97m의 크기에 두께 22cm로 현무암을 돌려 4각형의 축대를 쌓았다. 그 위에 8각형의 판석을 돌린 뒤, 다시 원형의 둥근 석판을 깔아 놓은 형태다. 나름대로 풍수지리에 의한 우주의 심오한 이치를 담은 형태다. 이 명월대는 1930년 명월청년회가 세운 것으로 북쪽 바위에는 6명의 기부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또 동쪽에는 당시 제주읍장인 연농 홍종시가 쓴 '명월대(明月臺)'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명월천에 1931년 구축된 '엉기정다리'는 원래 무지개형의 돌다리(石橋)였으나 1980년대 콘크리트 구조물로 개축돼 옛 멋을 잃고 있다.

명월대는 역사가 깊은 전통적인 선비마을의 자취를 드러내는 유적이다. 그런데 일제시대에 명월대가 세워졌다는 것은 의아스럽다. 월대와 누정 등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음풍농월 하던 유풍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명월대도 조선시대 선비들이 시문을 읽거나 지으며 즐겨 찾았던 명소를 후대 사람들이 그 자취를 되살리기 위해 세운 것은 아닐까 여겨진다. 일제강점기에 쇠퇴하던 민족의 얼을 되찾고, 수백년 서북부지역의 행정과 역사문화의 터전으로서의 자존을 살리고자 했던 청년들의 애향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명월대는 1971년 제주도지방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었다. 명월대 바로 곁에는 1931년 둥근 무지개형의 돌다리가 세워졌다. 그것을 1986년 옛 돌다리를 허물고 쌍무지개형의 철근콘크리트 교량으로 개축, 멋스러움이 사라져 버렸다. 이를 다시 원형으로 복원할 방안을 다시 강구해야 할 때다.

팽나무군락을 지켜낸 공동체 의식

명월대 주변에는 지방기념물 제19호(1973. 4. 13)인 팽나무 군락이 울창하다. 옛 북제주군 시절에는 주변의 명월대와 한데 묶어 북제주군 10경(十景)의 하나인 '팽림월대(彭林月臺)'로 선정하기도 했다.

어떻게 이들 고목의 군락이 지금도 남아 있게 된 것일까. '명월리지(明月里誌(2003)'를 보면 이들 팽나무가 어떻게 보존돼 왔으며, 그 배경은 무엇인 지에 관한 흥미로운 기록이 보인다. 옛 마을향약에는 '일지일엽(一枝一葉)이라도 (팽나무를)손상 시킨 자는 목면반필(木棉半疋)을 징수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만약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멍석말이'나 '수화불통(水火不通)'의 벌칙을 내렸다고 한다. 식수를 길어오지 못하게 하고 불씨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공동체에서 고립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 만큼 팽나무를 매우 소중히 보호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즉, 건천에 나무가 없으면, 한기(寒氣)가 살수(殺水)로 되어 재해가 일어나고, 건해(乾害)가 터지면 빈촌(貧村)이 되기 때문이다. 마을 자체적으로 종수감(種樹監)이라는 직책을 두어 팽나무군락을 특별관리·감독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심혈을 기울이며 보호했던 팽나무군락도 벌목될 위기가 있었다. 1949년 정월 무렵 한림지서에서 '4·3'으로 하동에 소개된 마을 유지 등을 부르더니 청천벽력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화목용으로 쓰기 위해 명월천에 있는 팽나무를 베어 공출하라는 것이었다. 수백년 간 마을의 수호신과 같은 고목들을 베어내라는 것은 너무도 부당한 일이었다. 하지만 '4·3의 광풍' 속에 주민들은 파리목숨이나 다름 없었다. 그 때 참석자를 대표하여 마을의 종수감(種樹監)을 지낸 오희규가 죽음을 각오하고 말했다. "우리 소개민들은 사태가 수습되면 하루속히 마을을 재건하여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명월천 팽나무를 베어버리면 우리는 무엇을 의지해 살아갑니까"라며 지서장에게 선처를 호소했다. 그는 "이는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마을 전체 주민들의 의견"이라고 한 뒤 다른 곳에서 소나무를 베어다 바치겠다고 약속, 지서장이 허락함으로써 팽나무군락은 위기에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을 하천의 범람을 막고 풍치를 지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명월리의 공동체의식은 재해가 빈발하는 오늘날 모든 마을이 귀감으로 삼을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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