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 제주 원풍경을 되살린다](6)제주읍성의 돌하르방

['경술국치 100년' 제주 원풍경을 되살린다](6)제주읍성의 돌하르방
본적지에서 쫓겨나 유랑하는 돌하르방
  • 입력 : 2009. 03.16(월) 00:00
  • 강문규 기자 mgkang@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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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강부언 화가(한국화)

읍성 수호신·종교·경계표시 기능 등 다양
기원설 제각각… 아스카 석상 영향 추론도
일제강점기 제주성 훼손으로 원자리 잃어


며칠전 한라일보는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르 클레지오가 올해 프랑스판 지오(GEO) 3월호에 기고한 제주여행기를 소개했다. '제주의 매력에 빠진 르 클레지오'라는 제목으로 쓰여진 이 제주찬가에는 돌하르방에 대해 "제주의 신비한 형상 중 가장 친근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돌의 할아버지. 그는 길이 서로 마주치는 곳이나 마을 입구에, 때로는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그는 모자를 쓰고 있다. 수염을 기른 얼굴은 웃음으로 갈라져 있으나 전구같은 눈은 감히 자기에게 다가오려는 사람들을 뚫어져라 쳐다본다"고 한 것이다.

돌하르방은 이처럼 옛날이나 지금이나 제주를 찾는 내외국인들에게 제주의 상징물로 인식되고 있다. 2006년에는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100대 민족문화상징의 하나로 제주의 해녀, 돌담과 함께 돌하르방이 포함되기도 했다. 그만큼 돌하르방은 국내외적으로 제주를 상징하는 석조조형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면 돌하르방은 언제부터 어디에 세워졌던 것일까. 돌하르방은 제주도 행정구역이 삼분하였던 조선조에 제주목·정의현·대정현 도읍지인 동·서·남문 옹성구비에 세워졌었다. 제주목에는 동·서·남문 안팎에 8기씩 24기가, 정의·대정에는 각각 12기가 세워졌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돌하르방이 세워진 연대는 담수계에서 펴낸 '탐라지'를 근거로 1754(영조30)년 김몽규 목사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제주시 관덕정에 서 있는 돌하르방의 모습. /사진=김명선기자 mskim@hallailbo.co.kr

돌하르방은 우석목, 무석목, 벅수머리, 돌하르방, 돌영감, 수문장, 장군석, 동자석, 옹중석 등 여러이름을 갖고 있다. 그러나 1971년 제주도 지방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면서 '돌하르방'이 공식 명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돌하르방은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읍성을 지키는 수호신적 기능을 띠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방사탑을 세운 것처럼 사악한 기운을 쫓아내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돌하르방이 세워진 시대에는 제주에 연이은 태풍 등으로 기근과 전염병으로 아사자가 수천, 수만에 이르렀던 시대로 김만덕이 사재를 털어 구휼에 나섰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각종 재해와 질병으로부터 성안을 지키기 위한 주술·종교적 의미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성의 위치 및 경계표시적 기능도 갖고 있다고 할 것이다.

돌하르방의 기원에 대해서는 조형적인 유사성을 중심으로 북방전래설,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기원했다는 남방전래설, 육지부 전래설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1925년 제주를 찾았던 일본인 건축학자(동경대 교수)이면서 일본 건조문화재 위원을 지낸 후지시마는 돌하르방에 대한 흥미로운 추론을 그의 여행기에 남기고 있다. 그는 제주의 성문 밖 좌우에 있는 기괴한 석상인 돌하르방과 미륵상을 소개한 뒤 '이 익살스러운 원숭이 닮은 상과 일본의 아스카(飛鳥)의 원석상(猿石像)과의 유사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는 '아스카'의 석조물에 대해 아직껏 어디에서 유래했는 지 규명이 안된 상태에서 일부에서 도래인(도래인; 옛날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의 작품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며 이들 돌하르방 등을 조각한 한반도의 석조문화가 일본의 아스카 석상에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추론하고 있다. 앞으로 관련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제주목에 세워졌던 돌하르방의 원풍경은 1914년 일본이 식민지 기초자료로 이용하기 위해 제주도에 대한 토지측량시 기록으로 남긴 자료사진에서 만날 수 있다. 그 사진에는 원형대로 남아 있는 성벽을 배경으로 돌하르방 4기가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시 옛 동문이 소재했던 우성목 거리에 남아 있는 돌하르방 기단석. 이들 돌하르방이 자리했던 'S'자형 도로는 동문으로 연결됐다. /사진=김명선기자 mskim@hallailbo.co.kr

이처럼 19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잘 남아 있었던 제주성 돌하르방들은 일제강점기 제주성의 훼손과 함께 유랑신세가 된다. 제주읍성은 1913년에 북성문, 1914년 10월에 동성문, 서성문, 간성문 등의 문루가 헐렸으며, 1915년에는 소민문과 북성, 1918년에는 남성문루가 훼철되었다. 1923년 동성위에 측후소가 설치되었고, 1920년대 후반에는 산지항 축항공사 때 대부분 제주읍성을 허물고 그 석재를 바다매립에 투입했다. 성이 사라진 터에는 도로가 개설됐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제주읍성 동문에 세워졌던 돌하르방은 용케도 남아 1960년대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는 남문이나 서문 돌하르방의 경우 읍성의 훼손과 함께 도로가 개설된데 비해 동문의 돌하르방은 신설되는 길에서 약간 안쪽으로 비켜 있었기 때문이다. 민속학자 현용준 선생의 회고에 따르면 1962년 돌하르방을 조사할 때 감리교회 뒤편 길다란 골목에 돌하르방 8기가 원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 세워진 상황은 "제주성이 있을 때 동문이 있었던 자리로부터 바깥으로는 길이 S자형으로 꼬불꼬불 뚫여나가 성문에서 약 35m 나아가면 길을 한번 굽이 틀고, 그 굽이 길에 또 좌우에 2좌씩 4좌가 마주 세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동문 돌하르방이 있었던 골목은 지금 우석목거리로 불리우고 있다. 돌하르방이 세워진 뒤 2백여년간 눈을 부라리며, 또는 해학적인 모습으로 길손을 맞던 우석목거리는 이제 길이 좁아져 3m도 채 되지 않을 정도다. 'S'자형으로 구불구불 이어진 길에는 돌하르방이 세워졌던 기단석이 집울타리 곁에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는 1966년 당시 제주민속박물관과 도청(현 제주시청)으로 각각 2기를 옮기며 기단석은 함께 옮기지 않아 그 자리에 남겨 두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의 문화재적 인식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그게 지금은 원자리를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제주민속박물관의 돌하르방 2기는 그 후 KBS제주방송총국으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돌하르방, 제자리 되찾아 줄 때

"소유는 자랑 아닌 역사의 짐"


돌하르방은 제주의 상징적 조형물이다. 그러면서도 원위치를 되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머물러 있는 돌하르방은 제주역사문화의 현실과 수준을 보여주는 서글픈 표상이기도 하다.

제주성에 세워졌던 돌하르방은 모두 24기였다. 그 중 원래 자리에 남아 있는 돌하르방은 1기도 없다. 돌하르방이 본적지에서 쫓겨나기 시작한 것은 1913년부터 제주읍성이 훼철되면서부터다. 남문의 돌하르방 8기는 제주공항, 삼성혈, 관덕정 앞에 각 2기, 목석원에 1기가 옮겨졌고, 1기는 종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 관덕정에 옮겨졌던 2기는 뒤에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서문 돌하르방은 관덕정 4기, 동문로터리 근처(구명승호텔 2, 구삼천서당 2)로 4기가 옮겨졌다. 그 후 동문로터리 부근의 4기는 삼성혈 건시문 앞과 제주대학교 박물관 앞으로 각 2기씩 자리잡게 된다.

동문 돌하르방은 1960년대초까지 제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립민속박물관에 2기, 구 제주대학교를 거쳐 현재 제주대 정문에 2기, 구 도청자리인 제주시청에 2기가 서 있고, 구 제주민속박물관에 있었던 2기는 KBS제주방송총국 정문에 서 있다.

이러한 돌하르방의 유랑은 일제강점기로부터 시작된 시대적 산물이자 아픔이다. 그러나 제주의 역사문화를 앞장서 지키고 복원해 나가야 할 돌하르방 소유 기관들이 아직도 문화재인 돌하르방을 원자리에 되돌려 놓으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돌하르방이 오랜 유랑을 청산하고 본적지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해당 기관에서는 대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돌하르방의 소유는 해당 기관의 자랑이 아니라 역사의 짐임을 깨달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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