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의의 문연路에서] 첫 제주 도시재생, 신산머루의 이후는

[강성의의 문연路에서] 첫 제주 도시재생, 신산머루의 이후는
제주 경제·문화 중심 '성안'
  • 입력 : 2021. 06.29(화)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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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흐르며 '원도심' 쇠락
신산머루서 '도시재생 뉴딜'
참된 지역공동체 실천 기회로




도시라는 단어는 제주와 참 어울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하면 떠오르는 건 천혜의 자연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에서도 도시의 성장과 쇠퇴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제주의 중심이었던 성안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겉모습은 달라졌어도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성안의 동문시장과 중앙로 일대는 대단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이후 시청거리에 젊은이가 넘쳐나기 시작했고, 대단지 주택단지는 주변지역인 이도2동, 일도2동, 신제주, 그리고 화북, 외도까지 확대됐다. 특히 신제주의 성장은 매우 빨랐다. 물론 제주도청 등 관공서와 방송국 등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행정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업체, 상가와 호텔과 유흥가까지 빼곡하게 채워져 관광과 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또 시간이 훌쩍 지나더니 중심가는 원도심이라는 말로 대체됐고, 신제주의 핵심지역인 연동의 쇠퇴도가 눈에 띄었다.

도시의 활력을 넣기 위해 나타난 방법론이 도시 재개발과 재생이다. 아직도 재개발과 재생의 논쟁은 평행선이다. 분명한 것은 재개발이 먼저였다. 이명박식 뉴타운 재개발은 판자촌을 거대한 아파트촌으로 만들어냈다. 물론 토지주의 동의가 전제됐지만 세입자는 논외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발생한 일이 '용산참사'였다. 그리고 민주적 절차와 현재 살고 있는 주민이 주도적으로 삶터를 바꿔야 한다고 나온 것이 박원순식 도시재생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2000년대까지 휩쓴 재개발의 광풍에서 하나의 출구전략으로 2013년 도시재생 사업이 나왔고, 서울의 창신동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제주에서는 '신산머루'가 첫 번째가 됐다. 2017년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공모해 그 결과 제주시 신산머루와 서귀포시 월평동이 선정됐다. 이후 신산머루 도시재생 사업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2018년부터 2021년 6월까지 국비와 지방비 총 84억원을 들여 골목길 정비, 마을 주차장 조성, 돌봄센터 건축 등을 통해 마을의 생활 인프라 개선, 골목길 경관 개선, 안전한 보행 환경을 바꿔놓았고, 예쁘고 아담하게 잘 정비됐다.

하지만 다시 부동산 광풍이 몰아닥치는 상황에서 도시재생은 도마에 올라와 있다. 물론 노후 저층 주거지가 밀집돼 있는 곳은 '지금'의 시각에서는 여전히 불편하다. 누구는 정감이 넘치는 골몰길이 좋다고 하지만 여기서 얼마나 계속 살 수 있느냐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렵다. 주민들이 도시재생사업으로 원하는 것도 도로, 주차장, 주민편의시설 등 기반시설이라면 과연 지금의 방식이 맞는 것일까 되묻게 된다. 도시재생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여기에 고민의 지점이 있다. 옳고 그름의 선택이 아니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천편일률적인 재개발방식보다 재생이 더 인간적이고, 과거를 담을 수 있고, 더 다양한 도시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특히 도시재생의 매력은 지역에 사람의 온기로 활력을 불어넣은 일이다. 그래서 지역주민협의체 운영이 핵심이고 사업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회의를 하고, 의견을 모아가고, 그리고 뭔가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출발해야할 것이다. 주민들이 떠나지 않는 곳, 주민들이 모여 새로운 일을 모색할 수 있는 곳, 진정한 지역공동체의 의미를 실천하는 마을로 변모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산머루'의 그 이후가 궁금해진다.

<강성의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환경도시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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