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다와 문학] (3)오경훈 연작소설 '제주항'①

[제주바다와 문학] (3)오경훈 연작소설 '제주항'①
어민 장두의 외침 "용감히 일어나라"
  • 입력 : 2019. 05.10(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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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2009년 펴낸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에 실린 19세기 말의 산지항.

18~21세기 항포구 배경
'모변' 등 시대순 9편 담아
외래인 침범 수탈의 바다

"우리를 곤고케 하는 것은 기근도 질병도 아니다. 나라를 침범하는 외래인들과 그들에 빌붙는 관리들이다. 자존이 있는 자들이여, 용약 일어나라. 주인되기를 피하면 종이 되는 법, 무괴한 이방인들과 그 주구들을 쓸어내 버리자…."

소설 '모변(謀變)'의 주인공인 건입포 어민 한기돌은 눈을 감은 채 척양척왜(斥洋斥倭)를 쓴 기치를 앞세워 군중을 끌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갑옷도 없이 종이적삼에 윗저고리 하나를 어깨에 올린 게 전부인 어민 장두였다.

강화조약 이후 일본 어민들이 제주바다에서 조업을 하기 시작하자 제주도민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산지포구 동쪽 동대머들 언덕에 살던 어가들 반이 전라도 경상도로 이사할 정도였다. 거기다 일본 잠수부들이 반나체로 물질하는 해녀들의 작업장을 휘젓고 다녔다. 건입포 어민들이 관청으로 달려갔지만 무책이었다. 역심을 품은 한기돌의 가슴엔 불길이 일었다.

오경훈(1944~)의 연작소설 '제주항'(2005)은 제주 항포구를 배경으로 18세기에서 2000년대에 이르는 제주 역사를 날줄과 씨줄로 풀어내고 있다. 2002년 상반기부터 제주작가회의 기관지인 '제주작가'에 연재되었던 동명의 연작을 바탕으로 일부 다듬고 고치거나 아예 다른 작품을 배치해 '모변' 등 9편을 단행본으로 묶었다.

작가는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태생이다. 어린 시절을 바닷가에서 보낸 그의 소설엔 해안 마을이 곧잘 등장한다. 작가도 고향 마을의 풍경, 직접 겪었던 일,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전해준 이야기들이 의식 속에 잠재되어 떠나지 않는 것 같다고 했었다.

그 유년의 기억 속 제주 땅은 예로부터 나라에 바칠 소나 말을 키우고 관리에게 재물을 빼앗기면서 핍박받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곳이다. 작가는 풍랑을 이기지 못할 걸 알면서도 관리들이 마을 장정들을 모아 억지로 국우 50두를 싣고 띄운 배에 올랐다 영영 돌아오지 못한 제주 사람들의 사연을 어른들한테 들으며 자랐다.

지금처럼 제주공항이 시끌벅적하기 전에 제주항은 오랜 기간 홀로 제주 관문의 역할을 해왔다. 그곳을 통해 온갖 슬픔과 기쁨이 드나들고 빠지길 반복했다. 제주항은 그 모든 걸 지켜봤다.

연작소설 '제주항'의 바다는 곧 수탈이다. 수모를 당하면서도 여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바다에 들었다. 남자들도 어업세 선박세를 벌기 위해 물때에 맞춰 고기잡이 나갔다. 1735년 부임해 별도포 축항에 나섰던 실존 인물 노봉 김정 목사가 나오는 '객사'를 시작으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 전개되는 9편은 그대로 고난의 제주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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