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학교 가는 길까지 보행권이 위협받으니

[사설] 학교 가는 길까지 보행권이 위협받으니
  • 입력 : 2018. 06.28(목)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제주의 도로행정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선진도시와 정반대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선진도시는 차도를 줄이고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인도를 넓히고 있다. 그런데 제주는 기존의 인도까지 서슴없이 줄여버린다. 그러니 사람을 위한 인도를 새로 만들거나 늘리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보행환경이 좋아질 수가 없다.

제주도는 지난해 대중교통체계를 전면 개편하면서 인도를 마구 잘라냈다. 중앙차로제가 운영되고 있는 광양사거리~아라초등학교 구간의 경우 인도 곳곳이 대폭 줄어들었다. 광양사거리 북쪽 흥국생명 앞 인도는 기존 3.3m 너비에서 1.8m로 거의 절반 가까이 좁아졌다. 이곳에서는 2명이 나란히 걸어갈 경우 교차보행을 못할 정도다. 제주지방법원 앞 인도도 기존 6.6m에서 3.2m로 절반 이하로 협소해졌다. 제주시내 최대 번화가인 시청 학사로 주변 역시 인도가 크게 줄어들면서 보행자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본보가 어제 보도한 서귀포시 동홍로 99번 도로도 마찬가지다. 이 도로를 이용하는 차량과 보행자가 많은데도 인도는 아예 없다. 특히 이 도로는 폭이 좁은데다 인근 유치원과 고등학교가 인접해 등하교시 학생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서귀포고등학교 후문과 이어진 이 도로는 인도가 없어 보행자들이 좁은 차선을 따라 걸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 흔한 과속방지턱조차 설치되지 않아 차량들이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보행자와 부딪칠 수 있는 사고의 위험성이 매우 높다. 이처럼 학교와 가까운 도로도 이 모양이니 다른 도로들이야 말해서 뭐하겠는가. 보행자의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제주도 도로행정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선진도시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라. 자동차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가고 있다. 서울시는 보행도시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올해 3월부터는 녹색교통지역 특별대책을 통해 '도로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세종대로(최대 10차로)와 을지로(최대 8차로)·퇴계로(최대 8차로)를 시작으로 4대문 안 모든 차도가 왕복 4~6차로로 줄어든다. 서울시는 이미 광화문에서 강남까지 두바퀴로 달리 수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 건설에도 착수했다. 호주 시드니는 2019년 도심 중심가 주요 도로에서 차량이 사라진다. 차량이 없어진 도로는 대부분 보행자 전용 공간으로 바뀐다.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는 완벽한 보행도시로 평가받을 정도로 보행환경에 힘쓰고 있다. 굳이 선진도시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날로 보행권이 중요시되는 상황이다. 제주도는 이에 아랑곳없이 기존 인도마저 잘라내는 등 도로행정이 거꾸로 가고 있으니 안타깝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5420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