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제주, 숲이 미래다 14] 5.가로수 조성·관리 이대로 좋은가 (3)나무를 해치는 가지치기

[청정제주, 숲이 미래다 14] 5.가로수 조성·관리 이대로 좋은가 (3)나무를 해치는 가지치기
심는 데만 급급…기준·원칙없이 몸통만 남긴 채 '싹둑'
  • 입력 : 2021. 12.07(화) 00:00
  • 이윤형 기자 yh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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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청사 나무들 ‘강전정’ 당해
벌목 수준 가지치기 금지해야
제주도 가이드라인 조차 없어
조례 등 법제화 작업 서둘러야
공동주택단지 관리 사각지대
공공재로서 공적 관리 필요

올해 봄 제주도청사 주변에 심어진 수십년 된 녹나무가 가지치기를 하는 과정에서 몸통만 남긴 채 무참히 잘려나갔다. 한라일보 DB

가로수는 해마다 봄과 가을에 다이어트를 한다. 지나치게 웃자라거나 병든 가지를 쳐내고 나무 모양을 다듬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해줘야 비로소 제대로 된 가로수로서의 기능을 한다. 나무를 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체계적인 조성·관리라 할 수 있다. 가로수를 어떻게 조성하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도시 이미지가 달라진다.

흔히 가로수는 도로의 부속물로 생각하기 쉽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가로수는 가지를 아무렇게나 잘라내고 베어내도 되는 천덕꾸러기 신세나 다름없다. 행정에서조차 이런 일이 벌어진다. 공공청사내의 수십 년 자란 나무들도 끔찍한 전정에 노출되는 일이 허다하다. 애써 가꾼 가로수를 가지치기하는데 가이드라인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산림청 '가로수 조성 및 관리규정 고시' 별표에는 낙엽 후부터 이른 봄 새싹이 트기 전에 실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제주도 행정기관에서는 일반적으로 봄철 가지치기는 3월에서 5월 사이에 대략 실시한다.

그렇지만 가지치기에 대한 기준과 원칙이 없다보니 나무의 모양이나 특징,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하지 않고 겨우 몸통만 남긴 채 마구 잘라내는 경우가 발생한다. 도로변 가로수는 물론이고 심지어 공공청사내의 나무들도 비켜가진 못한다. 올해 봄 제주도청이나 제주시청사 내의 수십 년 자란 녹나무들은 가지를 죄다 잘라내고 사실상 기둥만 남겨놓는 등 이른바 '강전정'을 당했다.<한라일보 5월25일자>

'강전정'(topping)은 가지의 80% 이상 잘라내는 과도한 가지치기에 해당된다. 목을 치듯이 싹둑 잘라낸다는 의미에서 '두목치기'라고도 한다. 이런 경우는 가지치기를 한 것이 아니라 벌목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무에 해가 되는 만큼 가급적 금지하고 있는 전정 방식이다. 국제수목관리학회의 수목관리 가이드라인 지침엔 가지치기는 25% 이내에서 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벌목 수준의 가지치기는 나무에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악영향을 준다.

몸통만 남긴 채 가지를 죄다 잘라내는 ‘강전정’을 당한 제주시청사내 녹나무. 한라일보 DB

사유 공간도 아닌 공공청사내의 나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당국의 인식 수준을 보여준다. 공공청사의 나무는 엄연히 공공재이고 시민의 재산이다. 그만큼 소중히 가꿔야 할 대상이다. 그럼에도 가지치기를 비롯한 수목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등 아무런 기준이 없다는 것은 문제다. 그동안 행정에서는 나무를 심는데만 급급했지, 어떻게 조성·관리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철학이 부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림청 '가로수 조성 및 관리규정 고시'에도 가지치기를 어떻게, 얼마나 잘라내야 하는 지 등 구체적 기준이 없는 실정이다. 가지치기 대상에 병충해 피해 가지, 마른가지 등을 나열하고, 방법도 침엽수는 눈 바로 위쪽에서, 활엽수는 아래로 향한 눈 위에서 한다는 등의 포괄적인 규정만 해놓고 있다. 이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대부분이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 가지치기에 관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시 마포구의 경우는 2018년부터 녹지보전 및 녹화자원에 관한 조례에서 가지치기의 양적 기준을 제시했다. 주요 골자는 4m 이상 키 큰 나무의 임의적인 가지치기 금지, '강한 가지치기'를 할 때는 구청장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것 등이다. '강한 가지치기'는 수관의 3분의 1이상을 가지치기 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경우도 가지치기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과 방법 등을 조례에 규정하는 법제화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이는 비단 공공청사 내의 나무들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제주도나 제주시를 비롯 행정에서는 매년 많은 예산을 투입 가로수 가지치기 사업을 전개하고 있지만 그냥 업체에 맡기는 것이 전부다. 과도한 가지치기가 벌어지는 지 등 사전, 사후 관리에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공청사 내 수목관리 기준은 물론 도로변의 가로수, 도시숲 등의 나무에 대한 가지치기 기준과 방법 등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나무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곳은 이뿐만이 아니다. 아파트단지 등 사유 공간에 들어서 도심속 녹지대를 형성하는 나무들도 마찬가지다.

제주지역도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늘어나면서 도심 녹지의 상당부분을 공동주택이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공동주택 녹지의 비중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공동주택 등의 녹지공간 역시 도심 경관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상기후로 인한 미세먼지나 도심 열섬현상 완화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공공 영역에서 조성한 도시숲이나 가로수처럼 여러 가지 순기능을 한다. 비록 사유 공간이고, 사유 재산일지라도 도심 환경과 쾌적한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재로서의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파트 등 공동주택 관리규정에 가지치기에 관한 규정 등이 없는 실정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인해 공동주택단지 내의 나무들도 강전정, 즉 두목치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조례 등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다. 이를 통해 행정기관의 지원 근거 등을 마련하고 공공재로서 공적인 관리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도로변의 가로수뿐만 아니라 공동주택단지의 나무들을 공공재로 인식해 공적인 관리를 해나갈 수 있도록 행정의 적극적인 개선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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