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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觀] 명백한 멋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입력 : 2021. 03.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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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틴 에덴'.

뮤지션 겸 작가인 요조가 최근 펴낸 에세이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은 예술가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덤덤하게 시작해 결국은 부푼 심장과 떨어지는 땀방울로 마무리되는 그녀의 취미 '러닝'처럼 그녀의 글도 담담한 서술이 끝나는 지점마다 어김없이 데이지 않을 정도의 뜨거움과 다음을 약속하겠다는 의지가 불타고 있어서 읽는 내내 씩씩하고 좋았다. 나는 2013년에 발매된 그녀의 앨범 '나의 쓸모'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 앨범은 지금 생각해보니 전체적으로 우울한 정조로 가득했다. 직접 쓴 노랫말들은 질문에 가까웠고 그 질문 또한 타인이 아닌 스스로의 마음 깊은 곳을 향하고 있어서 듣는 나는 할 수 없는 대답을 한참이나 찾다 말곤 했다. 마치 울면서 잘못했다고,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잘못이라고 하는 친구의 앞에서 '알아… 그래… 나도….'라고 끄덕이는 모양새로 노래를 듣고 노랫말을 씹었다. 당연히 쓴맛이 났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예술가라는 말은 멋있기만 한 것이 아니구나, 이 직업은 참 쓰고 슬프고 아픈 거구나. 그런데 거의 10년이 지난 후 출간된 이번 책에는 '이 직업은 명백하게 멋이 있다'라는 호쾌한 문장이 있어서 좀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천천히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는 예술가의 달리기를 보는 일이란 늘 반갑고 놀라운 일이다. 마치 달리기에서의 '러닝 하이'와도 같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그 질주의 찰나에서 그들은 스스로의 뜨거움을 실제로 마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실로 대단한 불과의 만남이 아닌가!

 얼마 전 본 영화는 그 뜨거움이 너무 생생해서 화면으로도 '불맛'이 느껴졌다. 대체적으로 2시간여의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는 이를테면 10%인 20분 정도만 봐도 대충 감이 온다. 내가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을지와 없을지 그리고 영영 좋아하게 될지와 두고두고 미워하게 될지가 말이다. 요즘에 극장이 아닌 환경에서 영화를 자주 보다 보니 그 20분은 '마의 20분'이 돼 버렸다. 20분까지는 어떻게 참고 보다가 그만 멈춤 버튼을 누르게 되는 일이 종종 생겼고 미안한 동시에 매우 화가 나기도 했다. '내가 그만 보게 되는 이유는 네가 대충 만들었기 때문이야'라고 성질을 내면서 그 영화가 싫은 이유를 조목조목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경우마다 나는 슬퍼졌다. 우린 서로에게 요만큼도 반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완전히 반해버린 '불맛'이 나는 그 영화는 한 사내가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익숙한 고전 멜로인 줄 알았는데 그것과는 결이 좀 다른 과격하고 뜨거운, 명백하게 멋이 있는 예술가의 이야기로 제목은 '마틴 에덴'이었다. 이탈리아 감독 피에트로 마르첼로의 2019년 작품으로 마틴 에덴이라는 이름의 한 남자가 한순간 욕망의 모호한 대상으로 단숨에 잠수해 스스로 물에서 뜨고 움직이는 법을 익히고 결국은 물보라처럼 사라져 버리는 강렬한 초상화와도 같은 영화다. 주인공 마틴 에덴을 맡은 루카 마리넬리의 강렬한 매력과 더불어 근래 보기 드문 진하고 독하고 뜨겁고 매운맛으로 펄펄 끓어오르는 작품이었다. 연출을 비롯한 모든 지점이 감탄할 만큼 멋이 넘쳐흘렀는데 특히 예술가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라는 예술가가 명명백백한 멋쟁이로 기억에 남았다. 그의 연기 중 가장 흥미로운 건 작가를 꿈꾸던 마틴 에덴이 우연히 만나게 된 부잣집 딸 엘레나에게 반하는 순간의 연기였다. 청년의 눈동자 가득 이글거림과 일렁임이 가득한 장면이었는데 나는 여전히 마틴이 반한 것 중 무엇이 제일 먼저였는지 잘 모르겠다. 지적인 허영심과 섹시할 정도의 자존감을 지닌 젊은 남자 마틴, 그리고 무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움의 총합 과도 같은 상대 엘레나. 아마도 마틴은 그 순간 엘레나와 엘레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매혹당한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하는 정도다. 확실한 건 그가 그저 한 여인 만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고 느꼈다. 원한 것이 너무 많아서였을까. 그 처음 이후 마틴은 엘레나 너머로 돌진한다. 미친 듯이 글을 읽고 쓴다. 작가가 되기 위해, 엘레나가 되기 위해 그는 온 힘으로 펄럭인다. 마치 그토록 원했던 아름다움이 그 자신을 멸시하기 라도 하는 것처럼 질투와 분노에 휩싸이는 불나방 같은 그는 점차 욕망의 부피를 늘려간다. 전쟁 영화도 아닌데 보는 내내 위험해, 위험하다고 이 말이 입 안에서 맴돌 정도였다.

 이 격정적인 서사의 캐릭터를 때려잡는, 마치 고함 과도 같은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 루카 마리넬리는 이 복잡하고 과격한 예술가의 세계를 눈부시게 체화하고 있다. 사랑에 눈이 먼 소년에서 난폭한 예술가의 심경 한복판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도 그리고 타이틀롤을 맡은 루카 마리넬리에게도 명백한 멋이 느껴졌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숨이 차오르기 직전까지 연기를 하고 그 연기를 카메라 너머로 지켜보는 모든 예술가들이 만났을 그 불을 나도 언뜻 목격한 것만 같았다. 멋이 넘쳐흐른다는 것 그리고 멈추지 말아 달라는 것, 예술가들을 위한 찬사와 기도의 말을 하게 되는 작품들을 만날 때 관객은 명백하게 그것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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