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문화광장] 진화하는 4·3미술, 기억투쟁에서 평화상생으로

[김준기의 문화광장] 진화하는 4·3미술, 기억투쟁에서 평화상생으로
  • 입력 : 2018. 03.20(화) 00:00
  • 김현석 기자 ik012@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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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미술'은 제주4·3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30년간 이어온 제주도 미술가들의 예술운동이자 사회운동이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미술로서 '5·18미술'이나 '4·19미술' 등을 떠올렸을 때에 비해 훨씬 더 또렷하게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 '4·3미술'이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30년간 예술운동을 이어온 것은 미술사적으로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것은 특정 예술이념이사 예술사조 운동에 그치지 않고 제주4·3의 진실을 밝히고 알리며, 어두운 역사에 대한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하는 감성영역의 사회운동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제주4·3은 미군정 하 남한의 단독선거에 반대한 제주도민들의 선거 보이콧에서 비롯했다. 수만 명의 민간인 학살로 이어진 제주4·3은 본질은 특정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근거해서 국가성립 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하여 소수 전위그룹이 정치투쟁을 벌인 것이 아니라 식민지배 이후의 해방정국에서 남한과 북한의 분단을 고착화하려는 시도에 동감하지 않은 다수 도민들의 반(反)분단운동에 있다. 따라서 아직도 분단체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에 비추어 제주4·3은 지나간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살아있는 동시대의 과제다.

2018년은 4·3미술 전환의 해다. 제주4·3 70주년을 맞아, 서울의 6개 전시장과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제주4·3과 동북아시아의 제노사이드를 다루는 전시를 개최한다. 그것은 4·3미술을 제주도만의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일이자 동북아시아의 일로 확장하고, 학살의 아픔을 평화상생의 메시지로 승화하는 일이다. 서울의 6개 공간에서 열리는 전시 "잠들지 않는 남도"는 제주도와 한반도의 비극을 함께 다룬다. 양민학살 문제를 다룬 한반도지역의 예술을 제주의 4·3미술과 함께 소개함으로써 향후 4·3미술을 지역 간 교류 차원으로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여는 전시 '포스트 트라우마'는 제주, 오키나와, 타이완, 베트남, 난징, 하얼빈, 광주 등에서 벌어진 20세기 동북아시아의 제노사이드를 연결한다. 제주와 이웃한 나라와 도시의 역사를 함께 재조명하면서, 4·3의 상처를 평화라는 인류사적인 보편 가치로 재해석하고자 한다. 전시 주제인 '포스트 트라우마'는 20세기 제노사이드의 역사가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고 애도하며 치유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 인류사적 차원의 공통과제라는 점을 공감하게 해준다.

제주4·3은 제주도만의 특수한 역사가 아니라 20세기에 세계 도처에서 벌어진 국가와 제국의 폭력이 유발한 사건들 가운데 하나다. 이제는 제주4·3을 제주도에서의 벌어진 우발적인 사건으로 인해 주민들이 희생당한 아픈 역사로만 볼 일이 아니라 일제로부터 해방된 조국이 남북으로 갈라지는 것에 동의하지 않은 제주도민의 반(反)분단운동으로 재정립할 시점이다.

제주4·3을 반(反)분단운동이라는 대한민국의 역사로 재인식하는 것은 2018년 올해 제주도와 대한민국의 의제이다. 역사인식의 문제와 더불어 제주 사회가 가해와 피해,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틀에서 벗어나는 사회적 대화 또한 중요하다. 제주4·3과 4·3예술이 '기억투쟁에서 평화상생으로' 진화하는 길에 우리 공동의 미래가 함께 있다.

제주도립미술관장 김준기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아 이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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