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제주의 9월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시기이다. 메밀꽃을 떠올리면 흔히들 강원도를 연상하곤 한다. 아마 막국수를 위시한 메밀로 만든 음식과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때문이리라. 그러나 2025년 기준 전국 메밀 재배면적의 73.7%, 생산량의 63.8%가 제주일 정도로 제주는 메밀 주산지이다. 국산 메밀은 대부분 제주에서 나오는데 메밀에 관한 이미지는 강원도가 가져간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제주 또한 강원도 못지않게 메밀에 대한 문화적 역량이 강하다. 제주에서는 메밀로 밥, 죽, 떡, 범벅, 수제비, 칼국수 등 다양하게 만들어 먹었다. 심지어는 국에도 메밀가루를 풀어 풀풀하게 먹었다. 메밀 요리 중 타지에서 찾아보기 힘든 음식으로는 범벅과 빙떡을 꼽을 수 있다. 범벅은 그 생김새 때문에 차마 타지 사람에게 권하기 힘들지만, 빙떡은 제주 음식 하면 떠오르는 나름 유명한 음식이다. 빙떡은 메밀가루로 전을 부쳐 팥소나 양념해서 삶은 무를 채워 만드는데, 근래 들어 팥소를 채운 빙떡은 찾기 힘들어서 아쉽다.
메밀을 활용한 음식은 물론이거니와 메밀에 관한 서사 또한 강원도에 뒤지지 않는다. 제주의 무가 중 하나인 '세경본풀이'의 주인공 자청비는 하늘에서 신이 되어 내려올 때 오곡을 갖고 내려온다. 이때 씨 하나를 빼먹어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 가지고 내려오는데 이것이 메밀이다. 자청비가 메밀만 늦게 갖고 왔기 때문에 메밀은 타 곡식들에 비해 비교적 늦게 농사짓고 10월 하순에야 수확한다.
메밀은 곡물 중 특이하게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곡물이다. 생육기간도 짧고 병충해도 적어서 구황작물로도 쓰였다. 이는 괜찮은 농지가 희박한 제주에 딱 맞은 곡식이었다. 제주는 쌀농사가 힘들어 주로 조나 보리를 재배했다. 그러나 조조차 재배하기 어려운 땅에서는 메밀을 키워 다른 곡식과 교환해 먹었다. 가끔 가뭄이나 태풍 때문에 조나 보리농사가 망한 경우에도 메밀을 심었다.
전통적으로 제주에서 메밀 파종은 24절기 중 처서 전후에 이뤄지고 수확은 상강 넘어서 행해졌다. 처서 전후에 파종하기 때문에 잡초도 더위에 한풀 꺾여 밭을 맬 필요가 거의 없었다. 파종할 때에는 재거름에 씨를 섞어 뿌렸는데, 이는 제주도 땅이 대부분 산성 토양이라 알칼리 성분인 재거름으로 중화하기 위함이다.
수확한 메밀은 맷돌에 갈아 껍질을 벗기는데 이를 제주말로 '검핀다'라고 한다. 이러면 고운 쌀이 나오지만 그 과정에서 가루같이 나오는 것도 있다. 이를 제주말로 느젱이라고 하는데 이것 또한 버리지 않고 범벅으로 만들어 먹었다. 벗긴 껍질 중 굵은 것은 메밀 베개의 속으로 넣었다. 메밀은 버릴 것 하나 없는 작물이다.
이처럼 제주는 메밀 요리나 메밀에 관한 스토리텔링을 전부 갖추었다. 이미 역량은 충분한데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메밀 최대 생산지인데도 알려지지 못해서 안타깝다. <문종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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