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간사이 남부에 위치한 와카야마현에서 출근 시간 시민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 특별취재팀
[한라일보] "자살대책은 살아가는 것에 대한 포괄적인 지원으로서, 모든 사람이 소중한 개인으로 존중받으며 삶을 촉진하는 환경의 정비가 이뤄지는 것을 목적으로 실시돼야 한다."
일본이 2006년 제정한 '자살대책기본법(이하 기본법)'에 제시된 기본이념이다. 기본법은 자살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복합적인 사회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강조하며 "아무도 자살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 실현"을 목표로 내세웠다. 연간 3만명을 웃돌던 일본의 자살자 수는 법 제정 이후 현재 2만명대 초반으로 감소했다.
l 자살대책, 지역의 역할을 묻다
일본은 일찍이 자살 예방에 있어서 '지역의 역할'을 강조했다. 자살은 지역과 성별, 연령, 특성마다 다른 양상을 띠었기 때문이다. 2016년 기본법 개정을 통해 각 도도부현(지방자치단체)에 대해 지역 실정에 맞는 자살대책계획의 수립을 의무화했다.
일본 간사이 남부에 위치한 인구 86만의 도시 와카야마현도 이에 따라 자살대책을 마련했다. 와카야마현의 2001년 자살자 수는 300명을 넘어섰고, 같은 해 10만명 당 자살자 수(자살률)가 29.9명에 이르는 등 높은 자살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기준 와카야마현의 자살률은 17.2명으로 눈에 띄게 감소했다.
행정은 먼저 자살예방을 위해 활발히 활동해 온 민간단체들과 전문기관들을 잇는 지역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2007년 12월 '와카야마현 자살대책 연락협의회'를 설치하고 의료·보건·복지·교육·법률·노동·민간 기관을 잇는 하나의 연결망을 형성했다. 2009년 9월 현정신보건복지센터 산하 '와카야마현 자살대책정보센터(현 자살대책추진센터)'를 개설했으며, 현재까지도 실태조사와 상담, 지원창구 안내, 게이트키퍼 양성, 자살유가족 모임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하자마 리카 와카야마현 마음의건강추진과 주임이 지난 7월 8일 와카야마현의 자살대책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l 복합 위기의 결과
대부분의 자살은 다양하고 복잡한 원인과 배경을 가지며, 여러 문제가 겹칠수록 그 위기는 더 커질 수 있다.
하자마 리카 와카야마현 마음의건강추진과 주임은 "개인이 겪는 복합적인 문제 4개가 중첩되는 과정에서 자살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조사가 있다"며 "여러 복합 위기가 생기기 전, 생애 초기부터 개입해서 자살을 예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관점에서 와카야마현이 내놓은 것이 '삶에 대한 포괄적 지원'이다. 24시간 365일 운영되는 상담을 통해 위기에 놓인 개인의 본질적인 문제를 파악한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면 의료·보건, 빚이나 생활고가 있다면 경제·법률 기관 등으로 연결해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동기가 다양한 만큼 지원창구도 세분화됐다. 와카야마현 정신보건복지센터 홈페이지에는 100곳이 넘는 상담창구의 연락처 및 채팅 링크가 안내됐다. 이용 대상도 각각 어린이, 청년, 여성, 노인, 성소수자, 신체 및 정신장애, 경제문제, 외국인, 범죄피해, 중독 등 구체적이다.
이와타니 준 와카야마현 정신보건복지센터 소장은 "자살의 원인은 보통 종합적이다. 아동·청소년기 때부터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성인이 되어 발현되거나, 성인 시기에 경제적 피해, 직장 내 문제 등을 함께 겪는 경우가 많다"며 "한 가지 문제만 해소한다고 나아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삶에 대해 총체적인 케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타니 준 와카야마현 정신보건복지센터 소장이 지난 7월 7일 와카야마현의 자살대책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l 앞으로의 과제
이러한 노력 덕분에 자살자는 감소했으나 새로운 과제가 떠올랐다. 전국적으로 아동·청소년의 자살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후생노동성 자료에 따르면 전국 아동·청소년 자살자 수는 2023년 513명, 2024년 529명, 2025년 538명 등으로 증가하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일본은 2023년 정부 차원의 대응을 위해 '아동가정청'을 출범시키고 관계 부서들이 참여하는 '아동 자살대책 긴급강화 플랜'을 마련했다. 2025년에는 지자체 차원의 대책을 강조한 '아동 자살대책 추진 패키지'를 발표했다.
와카야마현도 아동·청소년층을 별도의 정책 대상으로 설정하고, 이들을 위한 별도의 상담창구를 운영, 자살예방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더욱이 일본의 젊은 여성 자살자 중 40% 이상이 자살시도 경험이 있다는 통계가 나오면서 초기대응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와카야마현은 병원으로부터 자살시도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본인의 동의를 얻어 상담을 연계한다. 보건소에 인적 정보를 전달한 뒤 시도자를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보호·관리한다.
하자마 주임은 "아동기 때부터 자살을 생각하지 않도록 여러 상담창구가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한 예방교육을 확대하고 있다"며 "자살시도는 삶의 최후의 통첩이다. 자살시도자는 가장 위험이 높은 대상인만큼 보호와 재시도 예방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박소정·양유리·강희만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 ☎ 1577-0199, 자살 예방 상담 전화 ☎ 109 또는 자살예방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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