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로의 데스크 칼럼]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 도민 공론화 짓밟는 정치권

[고대로의 데스크 칼럼]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 도민 공론화 짓밟는 정치권
  • 입력 : 2025. 09.02(화) 01:00  수정 : 2025. 09. 02(화) 07:02
  • 고대로 기자 bigroad@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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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오영훈 제주도정은 행정체제개편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동제주시·서제주시·서귀포시 등 3개 행정구역으로 기초자치단체를 설치하는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이 권고안은 관련 조례에 따라 구성된 제주특별자치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지난 2022년부터 도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토론회, 공청회, 원탁회의 등 1년여의 공론화를 거쳐 마련한 것이다. 위성곤 국회의원(민주당·서귀포시)이 지난해 9월 이를 반영한 제주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논의는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두 달 뒤 김한규 국회의원(민주당·제주시을)이 돌연 제주시와 서귀포시 2개 기초자치단체 설치 법률안을 발의하며 혼란은 다시 시작됐다. 김 의원이 초기 논의 과정에서 입장을 밝히고 도민들과 공개적으로 토론했더라면 건전한 논쟁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3개 행정구역 설치안이 발의된 뒤 다른 법안을 내놓은 것은 공론화 결과를 무력화하고 도민의 뜻을 거스르는 독단적 행위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는 입법권 남용이라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상봉 도의회 의장도 혼선을 키웠다. 그는 지난달 도의회 임시회 개회사에서 "3개 행정구역으로 할지, 2개 행정구역으로 할지 여론조사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의장은 도민사회와 중앙정치권의 논란을 불식시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도민 공론화를 거쳐 도출된 결론을 뒤엎는 발언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민주적 절차를 강조하는 듯 보였지만, 정작 도민 공론화 결과를 존중하지 않은 태도는 행정 신뢰와 민주적 정당성을 뿌리째 흔들었다.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의 태도도 문제다. 올해 상반기 제주시를 두 개로 분할하는 것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분할 반대 의견이 많았다"고 밝혔으나 질문 문항과 표본 추출 방식 공개 요구에는 끝내 응하지 않았다.

도의회가 주도한 여론조사 역시 선택지를 '3개 행정구역 설치안'과 '2개 행정구역 설치안'으로만 한정하고, 현행 체제(특별자치도·2개 행정시) 유지나 다른 대안은 배제했다. 사실상 3개안과 2개안 중 하나 선택을 강요하는 식으로, 도민의 진정한 의사를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 이벤트가 아니다. 도민이 만든 공론화 결과를 존중하고, 그 결과에 기초해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책임 있는 자세다.

따라서 김 의원에 대한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이 의장의 무책임한 여론조사 시행은 의장이라는 자리가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권력의 오만이자 민주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무모한 행태로서, 결국 역사 앞에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더 나아가, 당내 의견조차 수렴하지 못한 더불어민주당과 오영훈 도정의 리더십 부재는 문제의 심각성을 배가시키고 있다. 지금이라도 분명한 입장과 실효성 있는 해법을 내놓는 것이 도백이 져야 할 최소한의 책무다. <고대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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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1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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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 2025.09.02 (22:40:35)삭제
지극히 옳은 지적이다. 다 아다시피 행정체제 개편안은 도지사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제주도내 각계 분야 도민들로 행정체제개편위원회를 구성해서 지난 2022년부터 도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토론회, 공청회, 원탁회의, 숙의토론 등 1년여의 공론화를 거쳐 개편안을 마련한 것이다. 지금까지 제주현안을 놓고 이만큼 도민의견을 수렴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짜기 한 국회의원은 이렇게 어렵싸리 결정한 개편안은 아랑곳없이 불쑥 또다른 안을 내놓는 오만함을 드러냈다. 게다가 도의회 의장은 자기가 무슨 결정권을 쥔 것처럼 느닷없이 개편안에 대한 여론조사를 강행하는 방자함을 서슴지 않았다. 자, 헌번 냥철하게 돌아보자. 행정체제 개편안은 최종 결정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공론화를 거쳐 도출했는데 무책임한 국회의원이나 도의장처럼 손바닥 뒤엎듯 뒤집어 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래서야 향후 지역현안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먹혀들지 암담하다. 최적의 행정체제 개편안을 도출하기 위해 공들인 공론화 과정이 이렇게 존중받지 못하고 되레 무력화시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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