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주희의 하루를시작하며] Manito

[권주희의 하루를시작하며] Manito
  • 입력 : 2025. 07.30(수) 02:15
  •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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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기초예술공간이자 대안공간인 스튜디오126은 신진 작가들에게 경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경력을 함께 만들고자' 2022년부터 개인전 지원 공모를 마련해 왔다.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개인전을 계획 중인 신진작가들을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했으며 선정된 작가에게 전시 공간을 제공하고 기획 및 서문, 작품 제작, 포트폴리오 제작에 관한 멘토링을 대표가 직접 지원해 격려한다. 올해는 이들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중진 진입기 작가들(박정근·조기섭)과 미학자(김지혜), 스튜디오126 대표(권주희)가 온라인 심사 및 면접을 진행했으며 추후 멘토링 워크숍도 주도할 예정이다. 올해 선정된 3인은 릴레이 형식으로 각자의 개인전을 펼쳐 보이며, 그 두 번째 순서로 신수와 개인전 'Manito'를 선보이고 있다.

신수와의 작업은 '향', '피부', '식사'와 같은 일상의 감각 요소를 통해 우리가 익숙해져 무감각해진 '이웃'이라는 관계를 다시 질문한다. 단지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지나치는 사이, 혹은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도 단 한 번의 신체 접촉 없이 물리적 공간을 공유하는 관계들. 그녀의 작업은 그 무수한 비접촉의 공존을 교란시키는 데서 시작한다.

'Be 누(累)'는 타인의 공간을 예고 없이 침범하고 그의 향을 고스란히 입으며 새로운 관계성을 실험한다. 작품에서 비누는 위생 도구가 아니라 '감각의 매개자'이자 '기억의 표면'으로 기능한다. 누군가의 사용 흔적이 남은 비누로 몸을 씻는 행위는 단순한 위생이 아니라 감각의 전이이자 기억의 공유이며, 나와 타인의 경계를 흐리는 의식에 가깝다. 이 작은 행위는 공공성과 사적 공간의 경계를 비틀며, 허락되지 않은 신뢰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논쟁적 깻잎'은 이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의 이면을 파고든다. 소셜 미디어를 떠들썩하게 했던 '깻잎 논쟁'을 실재의 공간으로 옮겨와, 그 사소한 접촉이 관계의 단서를 만들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깻잎을 떼어달라고 부탁하는 행위는 다소 엉뚱하고도 사소하지만, 바로 그 사소함이야말로 친밀함의 역치를 시험하는데 효과적이다. 깻잎 하나를 통해 누군가는 말문을 열고, 누군가는 침묵하며, 또 누군가는 질문을 던진다. 이 작업은 공동체의 내부에 가해지는 미세한 압력, 다시 말해 '불편함'이라는 감각을 통해 사회적 감수성을 재구성한다.

작가의 작업은 결코 드라마틱하지 않다. 오히려 극도로 일상적이고, 그래서 더욱 견고한 일상의 질서를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흔든다. 낯선 이웃의 초인종을 누르고, 샤워를 청하고, 함께 밥을 먹으며 우리는 결국 '사는 장소'에서 '살아가는 관계'로 이행하는 경로를 목격하게 된다.

신수와 작가의 작고 느린 행위들은 공동체에 대한 질문이자,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감각의 재조정이다. 우리는 전시를 통해 '사는 장소'로서의 공동체가 아닌, 감각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사이'로서의 공동체를 상상하게 될 것이다. <권주희 스튜디오126 대표·독립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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