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1대 대선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달 29일 제주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한라일보] 대통령선거가 있을 때마다 전국의 민심을 대변하며 '정치 풍향계'로 통했던 제주가 제21대 대선에서 그 이름을 되찾았다. 지난 20대 대선에서는 전국 개표 결과 제주 지역 1위 후보와 당선인이 어긋났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21대 대선에서 지난달 29~30일 사전투표, 3일 본투표 등 투표장으로 걸음을 옮겨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제주도민들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가장 많은 표를 주며 "제주 표심을 얻으면 대권을 갖는다"는 걸 다시금 입증했다. 12·3 비상계엄 이후 대통령 파면 선고로 실시된 조기 대선이라는 점에서 예견된 선거 결과라는 시각도 있지만 도민들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 투표에 참여하며 제주의 민심을 드러냈다.

12·3 비상계엄 후 제주시청 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한라일보 DB
제주는 대선 기간에 지역과 정파를 뛰어넘는 도민들의 선택이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던 곳이다. 제주 지역 선거인 수는 전체 유권자의 1%대이지만 거의 매번 '민심 바로미터' 역할을 하며 제주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관심을 받아 왔다. 이번 대선 제주 지역 선거인 수는 총 56만3196명으로 전체의 1.3%를 차지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대 대선 통계를 보면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곤 제주에서 이긴 후보가 대선에서도 최종 승리하는 결과를 낳았다.
13대(1987년)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 14대(1992년)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 15대(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16대(2002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17대(2007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18대(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19대(2017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바로 그런 사례로 개표 결과 모두 제주에서 1위에 올랐다.
이 가운데 15대 대선에서는 1~2위의 전국 득표율과 제주 득표율에 별 차이가 없었다. 전국 득표율은 김대중 후보 40.27%, 이회창(한나라당) 후보 38.74%였고 제주 득표율은 김 후보 40.57%, 이 후보 36.59%로 엇비슷했다. 18대 대선에서도 그런 모습이 확인됐다. 전국 득표율은 박근혜 후보 51.55%, 문재인(민주통합당) 후보 48.02%였고 제주 득표율은 박 후보 50.46%, 문 후보 48.95%로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제주는 지역 구도에 얽매이지 않고 유권자들의 성향도 특정 정당에 대한 쏠림 현상이 적은 곳으로 분석된다. 도민들이 상황에 따라 표심을 달리하며 비교적 냉정하게 민심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같은 공식은 지난 2022년 실시된 20대 대선에서 깨졌다. 이때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당시 개표 결과 전국 득표율이 윤석열 후보 48.56%, 이재명 후보 47.83%로 집계됐다. 이와 다르게 제주에서는 이 후보 52.59%, 윤 후보 42.69%로 1~2위 순위가 바뀌면서 오랜 기간 유지해 온 '제주 1위=대통령' 기록이 멈추게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주의 선택'이 곧 '국민의 선택'임을 득표율로 증명했다. 이는 한밤중 비상계엄 선포, 그 이후 전국 각지에서 잇따른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으로 3년 만에 조기 대선이 시행된 만큼 제주에서도 정권 교체에 대한 열망이 높았던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70여 년 전 제주4·3을 겪으며 국가폭력 피해를 경험했던 제주에서 비상계엄이 던진 충격은 컸다. 대통령 파면 선고 직후에 제주 정치권 일각에서는 "제주에서는 이 결정이 단순한 탄핵을 넘어 제주4·3영령들의 명령이라 믿는다. 국가폭력에 맞서 싸운 제주민들의 피어린 역사가 오늘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길을 열었다"는 논평이 나왔다.
제주에서는 비상계엄 이후부터 대통령 파면이 선고된 지난 4월 4일까지 4개월 동안 제주시청 일원을 중심으로 모두 스물아홉 차례의 탄핵 촉구 집회(제주도민대회)가 진행됐다. 도민들은 제주시청 광장에 모여 응원봉을 들고 스마트폰 불빛을 켠 채 '민주주의 회복'과 '헌정 질서 수호'를 외쳤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도민들은 너나없이 "새로운 나라를 맞이했으면 한다"고 했고 이번 대선을 계기로 그 바람이 실현될 수 있기를 염원하며 이재명 후보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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