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얼마 전에 지인을 만났다. 세 살 때 본 작은 아이가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고 하니 세월이 정말 빠르다.
온종일 쫑알쫑알 대던 그 꼬마 아가씨가 궁금해서 근황을 물어보니, 나름대로 꿈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재기발랄한 여고생이라고 운을 떼더니 이내 걱정이 담긴 말을 한다.
요즘 부쩍 힘들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닌다고. 심지어 가끔 이런 말도 곧잘 뱉는다고 한다. "학교 밖으로 나갈 거야."
투정인 듯 툭툭 내뱉는 아이의 말이라지만, 그 안에 내재된 불만과 고단함이 얼마나 큰지, 고민하는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아 안쓰러움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또 지인 역시 진학 코칭 아카데미며 진학 설명회를 찾아다녀봐도 고교학점제에 대한 말은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질문을 해도 속 시원한 답을 들을 수조차 없다고 했다. 설명하는 선생님들조차 '아직 확실하게 대답을 드릴 수 없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실정이라고 하니,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상담조차 받을 수 있는 곳이 마땅하지 않은 올해 고1 당사자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다.
게다가 제주도는 고교평준화가 되지 않은 지역이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학업에만 충실했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을 텐데 갑자기 자기의 적성을 찾아야 하고 진로 선택 과목을 정해야 하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고 체계적으로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다.
이렇게 내적 고뇌도 깊은데 수능 공통과목이 늘어나서 사교육비 또한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대입전형이 수능최저학력기준을 맞춰야 하는 실정이고 보니 기본적인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교육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지인은 도대체 이런 제도를 누가 왜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흔히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한다. 국가가 국민 교육에 책무감을 가지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육의 방향을 설정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을 보면 하루아침에 대통령의 말 한마디, 교육 수장의 말 한마디에 널뛰기하듯이 교육 시스템이 얼마나 자주 바뀌는지…, 씁쓸하기 짝이 없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아까운 우리의 미래 세대들에게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 얼마나 넓고 광활한지 알려주지는 못할망정 그 아이들의 찬란한 세계를 제도에 갇히게 해서 좁혀서는 안 된다. 점점 아이들 수는 줄어든다고 걱정하면서, 어째서 질문에 설명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입시제도를 시행하고 있는지, 시간을 두고 제대로 보강된 후에 시행하던지, 그도 아니면 폐기해야 한다.
대학 입학 문은 넓히고, 졸업 문을 좁히자는 슬로건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왜 실행되지 않고 있는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때다. <장수명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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