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115)-이불 속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115)-이불 속
  • 입력 : 2025. 05.13(화) 03: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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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속-류세라




[한라일보] 아직 찬 기운 아른아른하다 이른 아침

눈을 반쯤 감은 채 나는 또 안방으로 가는구나

모래사장에서 모래사장으로

바다 못 찾는 바다거북처럼



바스락거리며 파도 속에는

내 엄마,

내 엄마,



일어나신다 또 아플 일 있나

파도도 하얗게 목이 붓고

기도를 하면 또다시 기도가 생기고



살랑살랑 밀려와 떠다니는

머리칼과 엄마의 숨결

안방에서 한데 엉겨 붙을 때쯤

나는 시간에 걸린 시간을, 반쯤 뜬 눈으로, 허우적이는구나



밖은 아직 춥다, 말하는 사람이

나를 이불 속으로 밀어 넣고 나가신다

좀 더 자, 그러면 나을 거야 아빠도 오시고

삽화=배수연



"나"는 책상머리에서 잠이 들다 깨다 한다. 눈을 반쯤 감은 것은 눈을 반쯤 뜬 것이니, "바다를 못 찾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모래사장은 모래사장으로 이어져 안방은 멀고 멀다. 바다거북은 바다로 나가면 다시는 육지를 밟지 않는다는데 바다는 또 안방에서 몇 리나 떨어져 있나. 펼쳐진 노트 한 권을 덩그마니 놓아두고 마침내 안방에 닿으면 사람 들어오는 소리에 "바스락" 소리가 이어받아 엄마는 잠에서 깬다. 마치 이불속에서 엄마와 "내"가 가만가만 서로의 시간을 바꾸는 듯이. 아프면 또다시 아픔이 생기는 것처럼 기도를 하면 또다시 기도가 생기는 것처럼 엄마의 일상은 반복된다. 그때 졸음이 앉은 내 눈에 띈 엄마의 머리카락, 거기엔 잠을 놓아두고 나가는 엄마의 가쁜 숨결이 엉겨 붙어 있다. 헝클어진 엄마는 무엇이든 견디는 사람이다. 제 몸에 물이 넘는 것을 모르게 아니다. 그 수면 위로 꽃을 밀어 올리듯 "좀 더 자"라는 말을 남긴 채 차가움을 걱정하는 사람이 차가움 속으로 들어가며 차가움 밖으로 "나"를 밀어 놓는 것이다. "그러면 나을 거야". 어린 아픔의 새벽을 위해 늙어가는 아픔의 기도는 내면의 얼음을 깨는데 또 얼마나 걸릴까. 그리고 아빠는 언제 오시려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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