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80세가 넘은 형님이 목소리가 쉬고, 두통과 함께 음식 삼키기도 어렵고 체중이 많이 줄었다고 전화했다. 우측 목의 덩어리와 우측 성대 마비가 확인됐다. CT영상들에서 목의 우측 깊은 곳에 경동맥을 둘러싼 불규칙한 형태의 5㎝ 덩어리가 식도와 척추 근처까지 침범한 소견이 보였다. 덩어리에서 얻은 작은 조직이 미분화갑상선암으로 밝혀졌고, 암 조직에서 BRAF라는 암유전자의 돌연변이가 확인됐다.
돌연변이 BRAF유전자로부터 만들어져서 암의 성장을 촉진하는 단백질의 기능을 차단하는 다브라페닙(라핀나®)과 BRAF단백질과 연계돼서 반응이 이어지는 MEK단백질의 기능을 차단하는 트라메티닙(매큐셀®)이라는 약들을 매일 복용시켰다. 7일째 목소리가 트이면서 음식을 삼키기가 수월해졌고, 2주 후에는 덩어리가 만져지지 않았고, 두통이 없어졌다. 1개월 뒤 촬영한 CT에서는 덩어리의 크기가 90% 이상 줄었고, 주변으로 파고든 소견들이 거의 없어졌다. 수개월이 지난 지금은 건강하게 잘 지내지만 너무 비싼 약값 때문에 걱정하고 있다.
'표적항암제'란 암세포에서 중요한 단백질들의 기능을 차단하기 위해 합성된 분자의 크기가 매우 작은 화학물(표적화학제)들과 암세포의 표면에 있는 항원성 표적물질과 결합하는 단클론항체들을 합쳐서 부르는 용어다. 이름이 '-닙'으로 끝나는 표적화학제들은 세포의 분열과 성장 및 생존을 조정하는 핵심 단백질들에 작용해서 암세포가 죽게 만든다. '-맙'으로 끝나는 단클론항체들은 암세포 표면의 항원과 결합해 직접 파괴하는 기전과 항체의 꼬리 부분(Fc)과 결합하는 수용체가 있는 면역살해세포들을 불러들여 암세포를 파괴하는 기전으로 작용한다.
표적항암제를 선택하려면 조직검사나 수술로 얻은 암 조직 속 암세포들의 특정 단백질이나 그러한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돌연변이 암유전자를 확인해야 한다. 'bcr-abl'이라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 만성골수성백혈병의 백혈병 세포들은 백혈병의 발생과 세포증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강력한 티로신활성화효소를 갖고 있다. 30년 전 이 효소의 기능을 차단해서 백혈병 세포를 죽게 만드는 이매티닙(글리벡®)이 개발되면서 표적항암제라는 단어가 탄생했고, 치료방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후 효능이 뛰어난 다사티닙과 닐로티닙, 보수티닙, 포나티닙이 개발됐다.
새로운 표적화학제들이 계속 개발되면서 기타 혈액암들과 전이된 다수의 고형암들로 확대돼 가고 있다. 투명세포형 신장암에는 소라페닙에서 시작해서 파조파닙과 카보잔티닙이, 그리고 암세포가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갖고 있는 폐 선암에는 제피티닙에 이어서 엘로티닙, 카보잔티닙이 개발돼 우수한 성과를 얻고 있다. 형님처럼 암세포가 똑같은 돌연변이 암유전자를 갖고 있으면 암의 종류가 달라도 같은 표적치료제에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환자마다 암을 맞춤으로 치료하는 정밀의학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한치화 제주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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