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주희의 하루를 시작하며] 내 인생의 키워드

[권주희의 하루를 시작하며] 내 인생의 키워드
  • 입력 : 2024. 02.07(수) 00:00  수정 : 2024. 02. 07(수) 13:14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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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양력과 음력을 혼용하는 한국에서는 설 또한 새해 첫날과 민족 대명절로 나뉜다. 덕분에 가족이나 지인들과 한 해의 계획을 공유하며 덕담을 주고받기 바쁘다.

어린 시절에는 한 해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새해가 시작되는 것에 유달리 의미를 두었다면, 현재의 나는 매해가 바뀌는 시점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다만, 인생에서 커다란 흐름으로 정리해야 할 시기가 오거나, 방향을 전환할 때에는 가까운 과거를 곱씹어 보곤 한다.

필자는 2018년 12월 크리스마스에 제주에 입도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대안공간 '스튜디오126'을 마련했다.

처음에는 9평 남짓한 작은 공간으로 시작해, 이듬해에는 조금 더 큰 공간으로, 2021년에는 삼도동으로 이전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5주년을 맞이하는 올해에는 다시 이전을 준비한다. 임차인으로서 짧은 주기로 공간을 옮겨 다녀야 하는 형편이 조금 서러울 때도 있지만, 5년이라는 시간을 버텨내고 앞으로도 무던히 운영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다짐에서 용기를 얻는다.

'5'라는 시간의 숫자에 의미를 부여해 과거를 정리해 보니, 공간 오픈 이래, 총 42회의 전시를 진행했다. 최근 3년간은 평균적으로 한 해에 10회가 넘는 전시를 개최한 셈이다. 나름의 작은 공간에서 대안공간의 역할에 충실히 하기 위해 신진작가 공모, 기획자 공모, 중진 작가 전시 지원, 그리고 이 모든 이들의 네트워크 프로그램도 마련한다.

더불어 도·내외를 비롯한 해외 교류와 아트페어 참여도 추진하면서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가기도 한다. 현재까지 총 100여 명의 작가와 함께했고, 그 밖에 각 기관의 관계자, 업체, 일 년에 천 명이 넘는 관람객까지 추산해 본다면, 공간을 매개로 맺어지는 수많은 관계와 파생되는 이야기들도 무궁무진하다.

매해, 새 달력과 다이어리를 손에 쥐게 되면, 크고 작을 계획들을 줄지어 나열하게 된다. 대체적으로는 지켜지는 일보다는 반대의 경우가 흔한데, 그래서인지 아직 나는 아무것도 적지 못했다. 다만, 공간을 이전해야 할 시기에 물리적인 장소를 정리하고 다양한 의미가 깃든 과거의 시간을 정리해 본다. 그리고 새로운 공간에서 소식을 전할 날을 상상하며 전시에 담아낼 몇 가지 단어들부터 끄적인다.

마찬가지로 나의 삶 또한 시간의 경계가 아닌 키워드로 간략하게 정리해 보는 시간은 의외로 유의미하다. 욘 A. 린드크비스트의 소설 ‘경계선’을 인용하자면, '선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잠시 당황하지만 곧 자유를 느낄 수 있다.'라고 했다.

구획된 숫자와 시간에 연연하기보다는 과거에서 현재로, 또다시 미래로 이어질 삶을 큰 틀에서 바라보니, 오히려 딱딱한 생각과 태도가 유연해진다. 새삼스럽지만 연관된 환경과 수많은 인연에도 감사하면서 말이다. <권주희 스튜디오126 대표·독립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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