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제주살이] (61)당신을 쫓아온 사람

[황학주의 제주살이] (61)당신을 쫓아온 사람
  • 입력 : 2022. 11.22(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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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문학 강연의 자리에서 사회자 이병률 시인이 내게 물었다. 전생에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느냐고. 문학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불쑥 전생에 무엇이었느냐고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이병률 시인밖엔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본인은 과연 전생이 뭐였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다소 소박하고 엉뚱한 생각이긴 하지만, 한해살이풀과 여러해살이풀 사이에 두해살이풀들이 있다. 자운영, 꽃다지 같은 흔한 풀들이 사실 두해살이풀인데, 첫해엔 싹만 나니까 다른 풀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듬해 자라고, 꽃 피우고, 열매 맺고 죽는다. 같은 현생이지만 한 해는 보이지 않고 이듬해만 보인다는 점에서 그 두 시기를 사실상 전생과 현생의 모습으로 나눠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얼키고설킨 인간의 삶을 풀어줄 수 있는 타래 같은 것인데, 전생이 있다면 현생과 어떤 길고 지속적인 관계이며 동반자처럼 같이 진화해온 결과 전생이나 내생은 인간 없이 전생이나 내생이 될 수 없는 그런 사이가 아닐까.

또한 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생에 더 좋은 사람으로, 더 고귀한 존재로, 끝내 사랑을 이룰 수 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바람에 인간이 관여할 수 없는 것처럼 내생이 있다 해도 현생의 인간 영역이 아닌 것은 맞다. 무엇으로 살든 한 생만으로도 힘들고 모진 게 생인데, 다른 생이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인간이 내생에 관해 지극히 그리고 너무나 인간답게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득 내생을 기다리던 어머니의 표정이 예쁘게 떠오른다.

사실 인생에서 좋은 날은 얼마 되지 않는다. 좋은 것만 생각하고 가자는 말도 아픈 말이다. 우리는 1년 내내 귤을 재배하고 바다를 볼 수 있는 여기로 다시 돌아올 수 없고, 현생을 사는 동안만 산 사람이 된다. 분명한 것은 인간사엔 사랑으로 익혀진 성품 없이는 좋은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할 수 있는 사랑을 많이 간직하고 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사랑을 많이 하고 가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만약 전생이 있다면 그 전생이란 현생에 교훈과 영감을 주는 것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신념과 삶의 태도 또는 사랑에 관계하는 시나리오이며 내생이란 시들어가는 현생을 지켜주는 버팀목일 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전생에 관한 사실 여부보다 전생을 생각하는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내 시편 어디에 "사랑하고 사랑해서 두 생째 세 생째 당신을 쫓아갈 수 있다"는 구절을 써넣은 적이 있는데, 그게 몇 생이 있다는 자기암시였다면, 답변은 그렇다. 전생에서 나는 뭐였냐? 전생에서부터 당신을 쫓아온 사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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