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제주살이] (52)곶자왈의 전언 속으로

[황학주의 제주살이] (52)곶자왈의 전언 속으로
  • 입력 : 2022. 09.20(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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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드넓은 귤나무 묘목 지대를 지나 곶자왈이 시작되는 숲속으로 마른 천을 따라 1분만 걸어들어가도 세상은 딴 세상이 됩니다. 온갖 나무들과 대지는 구부러지고 펴지며 녹음을 낳고 그 녹음의 일렁임은 우리가 얼마든지 낮아져도 괜찮고 작아져도 괜찮다고 말해줍니다. 이곳에선 단지 사랑받는다는 느낌뿐입니다. 걷다가 빨간 잎이 하나씩 지는 담팔수 밑에 앉아보고, 돌무지를 감싸고 있는 키 낮은 관목 뿌리를 만져봅니다. 때로 곶자왈은 검다고 할 정도로 깊고 외로워 세상과 격절된 듯하지만 생태적 명상 속에서 길을 오르고 세상 계곡으로 나아가는 젊은이들과 먼바다에서 돌아오는 늙은이들이 '자연' 혹은 '생명'이라는 이념을 물려주고 물려받을 만한 곳입니다. 불현듯 초록을 한 자락 움켜쥐며 바람이 수런거리다 이내 빗소리가 나뭇가지들을 두드리기 시작하면 삽시간에 곶자왈은 음악의 향연으로 뒤덮입니다. 그 빗방울의 피고 스러짐은 순간과 영원이 공존하는 경이로운 비밀의 화원 곶자왈을 더욱 자유분방하고 물큰하고 쓸쓸하게 쿵쾅거리고, 이 복합적이고 기이한 아름다움 앞에서 '생명력'이라는 말이 가장 순수한 형태로 자신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진정 이 땅은 지금 다음 시대의 생활을 잉태한 채 일렁이고 있는 삶의 자궁이라 할만 합니다

제주도는 완전성을 스스로 지니고 있습니다. 이방의 눈에 거친 땅으로만 비쳤던 오래전의 제주 섬 또한 사실은 스스로 진화하면서 끊임없이 가장 알맞은 체질과 균형상태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대지와 바다, 인간, 동식물 사이에 그리고 몸이 영혼에 대해 영혼이 몸에 대해 관계하는 화해로운 공간방식이 존재했지요. 그것이 파괴된 것은 제주도의 역사적 지리적 환경의 탓이 크겠고, 또한 인류사적으로 여러 가지 현상들이 문명이라는 이름을 달고 보편적이며 대륙적인 차원으로 확대된 점에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 놀라운 혼재와 알 수 없음을 두려운 마음으로 마주합니다. 특히 지난 10여 년간의 변화는 상전벽해와 같습니다. 제주도를 잘 보존하려는 사람들이 옳았다는 것은 지금 제주도의 모든 나쁜 현상들에서 드러납니다. 입도객들의 폭증, 교통 정체, 쌓이는 쓰레기, 물자 부족, 자연의 파괴와 바다의 황폐화 등 제주도의 위기로 일컫는 현상들은 누대에 걸친 제주도의 완전성, 균형상태가 깨뜨려진 결과입니다. 모든 게 다 나빴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제주도가 마땅히 지녀야 하는 모습과는 다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제주도가 우리의 희망인 것은 본래대로 남아 있는 원초적 자연생태계의 보고이며 아직은 가장 옳게 보전되고 부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땅이기 때문입니다. 곶자왈이 해주는 말은 지금 켜켜이 쌓이고 있습니다.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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