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마침내, 탕웨이

[영화觀] 마침내, 탕웨이
  • 입력 : 2022. 07.08(금)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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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헤어질 결심'.

[한라일보] 아마도 모든 창작물 이를테면 영화 제목, 노래 가사, 소설의 문장 등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가 있다면 '사랑'이 아닐까. 사랑은 끊임없이 발화된다. 모두의 사랑이 다른 순간에서 시작되기에 이 무수하고 무한한 사랑의 탄생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사랑의 끝은 사랑을 했던 이들 모두가 알고 있다. 왜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고 어떤 육감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한 끝을 향하는지 사랑했던 우리는 모르지 않았다. 사랑을 말하는 일은 그래서 어렵다. 발화되는 순간 그것은 완성이 아니라 끝을 향해 달려가는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은 사랑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순도 높은 사랑 영화다. 그러나 그 끝은 이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산 정상에 한 남자가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 벌어지고 품위 있는 형사 해준(박해일)이 그 현장에 투입된다. 그리고 사망자의 아내인 서래(탕웨이)를 만나게 된다. 남편의 사망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꼿꼿한 서래는 유력한 용의자가 되고 해준은 그녀를 의심하며 수사를 시작한다. '헤어질 결심'은 이렇듯 수사극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내피는 온통 사랑의 빛깔인 영화다. 그런데 그 빛깔이 선홍색 설렘과는 다르다. 녹색도 파란색도 아닌 하지만 두 색깔 모두를 가진 청록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 서래 때문이다. 서래는 의심과 관심 사이를 기어이 뚫고 나온 서슬 퍼런 감정의 파도를 온몸으로 맞닥뜨리는 사랑의 용사다. 의심을 넘어서는 진심, 관심을 피하지 않는 확신을 갖고 있는 그녀가 높은 산을 오르고 파도치는 바다를 마주하며 겪어내는 이 곡진한 사랑의 전쟁은 사랑의 상대방인 해준뿐만 아니라 보는 이의 심장과 마음을 마침내 붕괴시키고야 만다. 박찬욱 감독의 섬세하고 리드미컬한 연출, 배우 박해일의 부드럽고 단단한 연기와 매력, 그리고 정서경 작가의 훌륭한 대사들과 류성희 미술 감독의 눈부신 미술 등 영화의 여러 요소들이 감탄할 정도로 인상적이지만 '헤어질 결심'은 누구보다 배우 탕웨이의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에 탄복하게 만드는 영화다.

'색, 계'와 '만추'를 통해 세상 어려운 사랑 영화를 누구보다 설득력 있게 전달했던 배우 탕웨이는 이 만만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의 지휘자다. 수사극의 대상으로도, 필름 누아르 장르의 팜므파탈로도 소비되지 않게 탕웨이는 서래를 단단히 껴안는다. 나이 많은 한국인 남편에게 고통받는 중국인 아내이자 노인들의 요양보호사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에게 불행은 마치 그림자처럼 느껴진다. 서래를 둘러싼 억측들과 추측들 또한 안개처럼 그녀 주변을 맴돈다. 그녀의 많은 것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제외하고는. 그러나 서래는 희미한 것들을 뚫고 지나가는 사람이다.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사랑임을 알아차리는 영민함과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대담함을 지닌 캐릭터 서래를 배우 탕웨이는 아득하게 펼쳐낸다. 묵직하고 나른한 배우 탕웨이의 목소리와 한국어, 중국어, 영어를 오가는 그녀의 특별한 언어 그리고 상대를 꿰뚫는 듯한 시선과 우아함을 잃지 않는 섬세한 몸의 움직임은 다소 익숙할 수 있는 캐릭터의 설정과 상황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탕웨이는 누구보다 서래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마침내에 이르는 결말에서 한없이 침착하고 고요하게 자신의 사랑을 완성하는 서래는 확신에 찬 배우 탕웨이의 품에 안겨있다. 배우 탕웨이는 '헤어질 결심'을 통해 또 한 번의 사랑을 완결한 듯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탕웨이라는 배우의 미지의 세계에 또 한 번 발을 디뎠을 뿐이다. 깊어지는 관심 끝에 남은 건 그녀의 차기작을 기다릴 결심뿐이다.

<진명현 독립영화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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