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2)공연장 역할했던 극장들

[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2)공연장 역할했던 극장들
영화 상영위한 무대 위에 제주연극 싹 트다
  • 입력 : 2017. 05.09(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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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극장 자리에 들어선 옛 현대극장. 안전진단 결과 사용을 금지하는 등의 E등급을 받은 건물로 제주시가 매입을 추진해왔지만 성사되지 않고 있다. 진선희기자

피란연극인 등 활약에 제주극장서 연극 무대 잇따라 열려
중앙극장·제일극장은 제주예총 주최한 제주예술제 행사장
이틀간 3000여 관객 몰린 극장 예술제… 문화적 갈증 반영

5월 현재 제주시내 영화 상영관은 4곳. 무슨무슨 극장이란 이름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시절과 달리 그 명칭에서 지역색이 사라진지 오래다. 복합상영관 체인점으로 이들 영화관의 스크린수는 모두 합쳐 25개에 이른다.

지금처럼 전문 공연장이나 전시장이 없던 시대에 극장은 대표적 문화공간 역할을 했다. 그곳을 찾은 구경꾼들이 무대 위에 집중할 수 있도록 건축된 공간적 특징은 극장을 여러 용도로 활용하게 만들었다.

예순해를 바라보는 탐라문화제의 전신인 제주예술제를 품었던 곳이 극장이다. 제주연극의 태동을 지켜본 곳도 극장이었다. 제주사람들은 극장에서 잠시 일상의 피로를 잊고 흥을 돋웠다.

제일극장에서 열린 예총제주도지부의 제2회 제주예술제. 객석이 그득 찼다. 사진=제주예총 제공

▶권투 경기 등 복합문화체육시설 기능=제주공연사에서 제주극장을 빼놓을 수 없다. 목조건물이던 제주극장은 사라지고 없지만 제주도민들에겐 오래된 극장으로 여겨지는 공간 중 하나다. 제주극장이 있던 곳에 들어선 현대극장 건물이 아직까지 남아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주극장은 가설극장 형태로 1944년 문을 열었다고 알려진다. 제주극장 이전에도 영화관은 있었다. '제주시 50년사'(2005년)를 보면 영화인 채록 등을 토대로 제주 최초의 극장을 창심관(暢心館)으로 소개했다. 일제강점기 제주시 칠성로 옛 제일은행 자리에 있던 창심관은 일본인이 경영했다. 이 건물은 화재로 소실됐다.

해방 직전 세워진 제주극장은 무성영화와 유랑극단의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1947년 '제주신보'에 실린 짤막한 광고를 보면 제주극장의 복합적 기능을 살필 수 있다. 영화 상영만이 아니라 권투경기도 열렸다.

악극 등 한국전쟁기 연극 공연이 이어진 곳도 제주극장이었다. 제주예총이 펴낸 '제주문화예술백서'(1988)엔 1951년 제주극장에서 '황혼의 비곡(悲曲)'이 공연되는 등 무대가 잇따른 점에 주목했다. 김묵 등 피란연극인들을 중심으로 연극 활동이 이어지면서 극장 발표 기회도 늘어갔다.

이같은 연극인들의 활약은 제주 문화계에도 영향을 줬다. 제주시내 초·중·고등학교와 제주사범학교 등에서 연극을 공연하는 예술제가 잇따르고 1954년엔 학생연극경연대회가 개설된다.

이 무렵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제주도지부가 꾸려졌다. 전쟁을 피해 제주로 예술인들이 대거 몰려 들면서 출범 여건이 무르익자 1956년 10월 신성여중 강당에서 첫발을 떼어놓는다. 연극분과위원회 역시 문총제주도지부의 출발에 맞춰 구성됐다. 1958년엔 신극동인회가 만들어진다. 이같은 움직임에 줄기를 대고 뒷날 제주연극협회가 탄생한다.

옛 현대극장 건물엔 매표소로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자그만 철제 구멍이 남아있다.

▶공연 분야 프로그램 단골 행사장=제주시 도심의 유일한 문화공간으로 한 시절을 났던 제주극장의 전성기는 다른 극장의 출현으로 서서히 막을 내린다. 1956년 12월엔 칠성로에 중앙극장이 개관한다. 1961년 8월에는 제일극장이 생겨난다.

중앙극장과 제일극장은 제주예술제 행사장으로 쓰였다. 제주예술제는 5·16 군사정변 이후 해체된 문총에 뒤이어 1962년 4월 29일 조직된 한국에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제주도지부(지금의 제주예총)의 창립과 흐름을 같이한다. 예총도지부는 발족과 동시에 '제주도 특유의 지방예술문화의 계몽과 향상'을 목표로 종합예술제인 제주예술제를 기획했다. 제주예술제는 3회까지 계속된 뒤 4회인 1965년부터 한라문화제로, 41회인 2002년부터 탐라문화제로 명칭이 바뀐다.

제주예술제 첫 해는 중앙극장을 썼다. 미술 전시를 제외한 서제, 문학제, 음악축전, 연극, 무용이 중앙극장 내부를 채웠다. 당시 신문기사에선 1962년 5월 17~18일 이틀동안 3000여명의 관객이 몰렸다고 적었다. 엄청난 규모다.

2회 제주예술제는 1963년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3일동안 제일극장을 공연장으로 활용했다. 1회 프로그램에 더해 미술실기대회, 학생백일장 등 청소년 참여 행사를 늘리는 등 12개 분야에 걸쳐 예술제가 마련됐다. 제주예술제 극장 시대는 1~2회로 끝이 나지만 3회때도 일부 프로그램은 극장에서 열렸다. 제주시민회관에서 개회식을 치르는 등 주요 무대가 바뀌었지만 직장 친선노래자랑은 제일극장에서, 폐막식은 중앙극장에서 진행했다.

문 닫은 극장 매입 '잔혹사'

뛰어오른 부동산 가격 등 이유
옛 현대극장 매입 사실상 무산
앞서 활용됐던 코리아극장은
임대계약 만료 7년만에 이사

문 닫은 극장 활용이 쉽지 않다. 제주시 원도심 재생 사업으로 진행됐거나 추진해온 극장 관련 사업이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제주시가 1969년 2월 25일 준공한 건축물로 파악하고 있는 옛 현대극장 건물은 3~4년 전부터 지자체에서 매입을 추진해왔다. 같은 자리에서 운영됐던 제주극장이 지니는 상징성 등을 감안해 매입 후 원도심 재생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꾸준했다.

영화문화예술센터로 활용했던 옛 코리아극장.

하지만 매입은 물건너간 분위기다. 제주시가 일찌감치 건물·부지매입비로 10억원의 예산을 편성해놓았지만 건물주는 매각에 부정적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몇 년새 뛰어오른 부동산 가격 등이 그 원인 중 하나다.

현대극장 건물은 안전진단 결과 사용금지나 긴급보강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시는 해당 건물 외벽에 2015년 11월 11일자로 작성한 재난위험시설(E등급) 안내판을 붙여놓았다.

옛 코리아극장은 첫 단추를 잘못 꿴 사례다. 제주도가 유휴시설이던 코리아극장 내부를 고쳐 칠성로를 중심으로 원도심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매입이 아닌 임대 방식으로 공간을 꾸려가다 문제가 불거졌다.

2010년 10월 영화문화예술센터로 새 옷을 갈아입은 옛 코리아극장은 당시 영화상영과 소규모 공연이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며졌다. 센터 조성 이래 한해 관람객이 약 5만명일 정도로 방문객이 꾸준했다.

영화문화예술센터의 이같은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옛 코리아극장 건물주가 바뀌자 집을 비워줘야 하는 처지가 됐다. 당초 2017년 3월까지만 임대 계약이 된 상태여서 10년도 안돼 칠성로 시대를 접어야 했다. 영화문화예술센터는 지난달 옛 제주대병원 인근에 운영중인 메가박스 제주점 상영관 일부를 빌려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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