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칼럼] 구름과 농부

[한라칼럼] 구름과 농부
  • 입력 : 2015. 08.11(화) 00:00
  • 뉴미디어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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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식물의 계절이다. 한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넘는 불더위에도 식물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왕성하게 자란다. 식물을 재배하는 농민들도 그들만큼 바쁘다.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새벽 비교적 서늘한 때 일을 하고 붉은 색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하는 오전 11시쯤에는 일손을 멈추고 쉬었다가 하얀 태양이 붉은 색을 드러내는 오후 서너 시 정도에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 한해 농사를 짓고 말거라면 자연의 변화와 시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지만 농사를 업으로 하려면 햇살에 순응하라는 선배 농부들의 충고를 들을 만하다.

아침 이슬이 마를 때쯤 한참 일하다 쉴 시간, 내 아들보다 어린 애덕나무 이파리가 만들어 내는 손바닥만 한 그늘 아래서 땀을 닦고 물을 마시며 하늘을 본다. 비를 머금지 않은 구름에는 용도 있고, 곰과 거북이, 토끼, 아기를 품은 어머니 그리고 알 수 없는 형태의 갖가지 형상들로 바람 따라 흘러간다. 용은 지렁이로 변하고, 곰은 개로, 토끼는 병아리로 변신을 하다가 커다란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만물이 그러하듯 시간이 지나고 공간이 달라지면서 자연은 변하는 것이다.

비가 내리지 않아 카랑카랑한 땅에서 잡초를 매면서 변화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은 작약 밭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쇠비름이나 도라지 밭에 자라는 한련초, 백수오 밭에 귀찮을 정도로 많은 까마중도 내가 키우는 약초와 마찬가지로 모두 차별 없이 내리쬐는 태양과 달과 별, 바람과 비를 맞고, 흡수하며 자란 것이기에 필요한 사람에게는 귀한 약초다. 잡초의 변신이고 내 생각의 변화다.

어둑한 시간 하루 종일 밭일을 하다 집으로 돌아와 땀에 흥건하게 젖어버린 작업복을 벗으며 이와는 전혀 다른 변화를 본다. 왕복 2차선 도로가 뚫리고 아파트와 빌라로 집이 포위되면서 주위의 눈 때문에 마당에서 큰 물통에 몸을 담그고, 북두칠성과 은하수와 3등성까지 바라보며 하루의 피로마저 풀 수 없게 됐다. 개발이라고 하는 잘못된 변화가 내가 그나마 낙으로 여기던 여유로운 공간까지 가져가 버렸다.

밭일을 하다가 아무리 갈증이 심해도 물이나 막걸리를 마시기 전에 조금 부으며 고마움과 농무마다의 기원하던 토지도 예외가 아니다. 개발이라는 탐욕과 이기심 때문에 한라산 자락은 물론이고, 바닷가까지 성한 곳이 없다. 토지가 재산이나 재산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요즘처럼 파헤쳐 진다면 고귀한 제주 땅은 천한 땅으로 변할 것은 자명하다.

토지거래와 개발을 통해 아무리 많은 재산을 축적하고, 이를 자랑한다고 해도 구름 호랑이가 고양이로 변하고 커다란 구름 속으로 합쳐지듯 그들 역시 토지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농부와 같은 인간일 수밖에 없다. 왜 개발과 땅에서 물이나 무진장 뽑아 팔아먹을 생각만하고, 새로운 세대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가.

엊그제 입추가 지나 햇살의 뜨거움도 수그러질 것이고 다시 서늘한 가을이 찾아올 것이지만 너무 파헤쳐지면 절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단순해야할 농부의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왜 이리 걱정이 많은가. 나도 소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약초농사꾼이다. 그래서 밭에서 자라는 잡초 같은 약초를 캐내 말리거나 발효액으로 만들어 필요로 하는 사람에 줄 수야 있겠지만 이러한 걱정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송창우 약초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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