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人터뷰]퇴임하는 윤영호 제주경찰청 수사2계장

[한라人터뷰]퇴임하는 윤영호 제주경찰청 수사2계장
"수사관은 투명한 유리관에 담겨있는 사람"
  • 입력 : 2015. 06.30(화) 00:00
  • 이상민 기자 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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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 계장은 "퇴임 후에도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강경민기자

불법 교육감 선거후보 전원 구속 등 공직비리 척결
갖은 압력에도 "원칙 있었기에 두려움 없이 수사"


"투명한 유리관에 담겨 있다." 제주지방경찰청 윤영호(60·경정)수사2계장은 수사관으로 지내며 무엇이 가장 힘들었느냐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괜한 오해를 받을까 평소 알고 지낸 사람들과 소주 한 잔 기울이지 못하고, 집과 사무실만 오가는 13년 동안 그는 이 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철저하게 통제된 생활. 수사관의 숙명이다.

29일 35년간의 경찰 생활을 마감하는 윤 계장을 집무실에서 만났다. 퇴임 소식이 미리 알려져서일까.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를 찾는 '격려 전화'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수사통으로 알려진 윤 계장의 첫 보직은 정보관이었다. 1979년 경찰에 입문한 윤 계장은 17년간 정보 분야에서 일하다 2001년 수사 분야로 자리를 옮겼다. 남의 비리를 수사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당시만해도 수사관의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윤 계장은 수사 보직을 한사코 거부했지만 한달 후 수사2계장으로 강제 발령됐다.

윤 계장의 이름이 알려진 건 2004년쯤이다. 유사수신·환경사범 사건을 주로 맡던 그는 그해 제주도교육감 불법 선거 사건을 수사하며 후보자 4명을 전원 구속시켰다. 이후 대대적인 수사에 나선 윤 계장은 교육감 당선자를 포함해 43명을 구속시키고 78명을 불구속 입건하는 등 121명을 형사처벌했다. 당시 소환된 인원만 공무원을 포함해 450명에 이른다. 윤 계장도 당시 사건을 경찰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선거문화가 변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맡은 사건도 대부분 공무원이나 선거 후보자가 연루된 사회적으로 민감한 것들이었다. '저승사자'라는 별명도 이 무렵 붙었다. 윤 계장 앞에서는 고위 공무원, 저명 인사들의 압력도 소용 없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윤 계장은 "하루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이 찾아와 수사관 '모가지'를 전부 자르겠다고 말했다"면서 "선거사범이나, 공무원 비리 사건을 맡을 때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은 없었다"고 전했다.

수사2계는 야근 많은 부서로 통한다. 계장이 퇴근하지 않으니 부하 직원도 여지없이 야근이다. 대신 보상이 뒤따랐다. 1년여 사이 5명의 특진자를 배출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부서도 수사2계다. 하지만 그런 윤 계장도 아쉬움은 남는다. 그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가장 미안하다고 했다. 밥먹듯한 야근에 35년간 경찰을 하며 가족과 변변한 여행 한 번 못갔고, 동창모임에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윤 계장은 "퇴임 후에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다"면서 "또 지역 사회에 봉사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고 했다.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아까지 않았다. '경찰 앞에 만인이 평등한 사회.' 윤 계장은 내일 퇴임식 때 읽으려고 미리 종이에 적어 놓은 구절을 다시 한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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