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왕매미가 울면 장마가 끝난다'라는 말을 들은 것은 아주 어릴 적이다. 엊그제 새벽에 왕매미 울음소리를 잠깐 들었다. 주변 사람들도 들었다고 하니 나의 환청이 아닐 듯하다. 기상청은 장마가 끝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왕매미 울음소리와 장마 종료로 연결한 이 말은 틀렸을까.
조상들이 계절과 날씨의 변화를 오랜 세월 축적된 경험과 지혜로 예측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틀렸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조상들은 비슷한 시기에 많은 매미가 한꺼번에 울어대는 것을 이야기했을 것이고 이때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시작된다는 것은 우리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몇 마리가 울어도 장마가 끝나지 않는 것처럼 세상사도 자연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인간에 의한 기후 변화 때문인지 아니면 착각 때문인지 몰라도 일찍 나온 매미는 외롭고 생명체로서의 혹독한 시련을 겪을 것이다.
매미들은 비슷한 시기에 암수가 땅속에서 올라와 탈피라는 과정을 거친다. 나무에 오른 수컷들이 인간의 귀청이 터지건 말건 한꺼번에 울어대는 것은 암컷을 찾아 후손을 생산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이기 위함인데 요즘 가끔 우는 매미는 어쩌면 후손도 없이 생명을 마감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만약 그 왕매미의 후손이 단절됐다면 그 무리에서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7년 동안의 땅속 생활과 7일 동안의 나무 생활을 통해 조상들이 쌓아온 유전정보가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니 말이다.
식물도 다르지 않다. 요즘 길거리에는 수국이 탐스럽게 피었고, 어느 집 울타리에도 능소화가 붉은 꽃을 늘어뜨렸다. 부부 금실을 좋게 한다는 자귀나무도 부채꼴의 가는 꽃잎으로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한들거리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꽃을 피워서 벌이나 나비와 같은 곤충을 유혹하는 것은 이들을 빌어 다른 존재가 만나 후손을 만들어 온갖 정보를 물려주기 위한 전략이다. 서로 돕고 의지하며 공존과 진화를 통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먹이사슬 최정점에 있는 인간은 어떨까. 자연에서 빼앗기만 하고 돌려주는데 너무 인색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돈과 권력이 개입되면 자연은 물론 같은 존재를 막무가내로 대한다. 그들이 세상 전부인 듯 시끄럽게 떠들었다. 서로를 다독이며 숨죽이고 사는 많은 사람은 그들의 그릇됨을 다 알았다. 단지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혼자 울어버린 매미는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을지 모른다. 시기를 놓친 생명은 자연에서도 고립된다. 지난 3년, 계절은 어긋났고 생명들은 말라갔다. 혼자 웃고, 혼자 떠들며 빛보다 앞서 나가려 한 존재들은 결국 숲의 리듬을 흐트러뜨렸다. 하지만 숲은 조용히 견디며 살아 있었고, 땅속 생명들은 서로를 느끼며 버텼다. 함께 하면 모든 생명은 다시 제소리를 찾는다. 새로운 세상은 제때 피고, 제때 울고, 제 몫의 햇빛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너무 늦지 않기를. <송창우 제주와미래연구원장·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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