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윤성익의 '왜구, 그림자로 살다'

[이 책] 윤성익의 '왜구, 그림자로 살다'
동아시아 바다 출몰한 '왜'의 다양성
  • 입력 : 2021. 06.04(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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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 그림자로 살다'에 실린 '주해도편'의 '영파부도'. 왜구로 몰려 죽을 위기에 처했던 15세기 조선 표류인 최부 일행이 당도했던 지역이다.

국가권력 혼란기에 극성
표류인 왜구로 몰려 희생

왜구 일부만 부각해 이용


1487년 경차관에 임명돼 제주에 부임했던 최부는 부친상을 접하고 1488년 윤 정월 3일 고향 나주로 향하다 풍랑을 만나 표류한다. 최부 일행은 중국 절강성 영파부에 다다르는데, 명나라 관헌들은 바다를 건너온 정체 모를 이들을 의심한다. 왜구로 몰렸던 최부는 수 차례의 필담 등 필사적 노력 끝에 자신들은 조선인, 그것도 표류인이라고 밝히며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다.

현재 제주에 살고 있는 윤성익 박사의 '왜구, 그림자로 살다'는 동아시아 역사 속에 여러 모습으로 드러나는 왜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학문적 영역의 개념에서 왜구를 13~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동아시아의 바다에서 활동하던 존재로 한정해 다뤘다.

저자는 13세기와 14세기의 왜구에 차이가 있고, 14~15세기의 전기왜구와 16세기의 후기왜구도 상당히 다른 면이 많다고 했다. 후기왜구의 경우 '다수가 중국인이었다'고 설명되지만 일본인만으로 이루어진 왜구도 있었다. 동아시아 해역에서 왜구가 들끓던 시기는 주로 중국이나 고려(혹은 조선), 그리고 일본의 국가권력이 통제력을 일정 부분 상실한 혼란기였다. 3국의 바다가 밀무역과 약탈의 현장으로 변하기 십상이었고, 국가권력은 해법을 강구했다. 하지만 표류인을 왜구로 몰아 죽이는 등 그러한 시도가 늘 성공적이진 않았다.

혼란스러웠던 동아시아 3국의 내부질서가 회복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국제질서가 정립되면서 왜구도 점차 그 안으로 편입되어 갔다. 통치 권력의 강화와 안정화는 왜구의 존립을 어렵게 만들었다.

왜구란 존재는 희미해졌지만 나라마다 다른 방식으로 소비됐다. 일본은 군의 진격과 점령지 확대 명분에 왜구의 공적을 강조하거나 날조해 써먹었다. 중국은 '일본인 침략자' 왜구를 물리친 척계광을 '민족 영웅'으로 부르며 '하나의 중국' 역사관을 강화했다. 한국에서도 영웅 이성계를 만드는 데 쓰거나 열녀나 충신의 이야기에 악역으로 등장시켰다.

저자는 "각각의 지역에서 그리고 시대에 따라 왜구는 그 다양한 모습 중 일부분이 부각되어 이용되어 왔다"면서 "왜구의 실체라는 것을 밝힌다고 하면서도 결국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았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세창미디어. 95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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