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의 문화광장] 제주경관 관리계획에서 ‘본다는 것’의 의미

[양건의 문화광장] 제주경관 관리계획에서 ‘본다는 것’의 의미
  • 입력 : 2021. 03.02(화)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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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안의 자연경관 중에서도 중문 대포해안의 주상절리대는 대표적인 경관 자원이다. 그런데 막상 주상절리대를 방문해 보면 우후죽순의 건축물과 조형물 그리고 외래식생에 의해 혼란스러운 경관을 체험하게 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서귀포시는 주상절리대 일대를 대상으로 경관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2017년에 기본 계획을 수립했고, 2018년에는 '제주 중문 대포해안 주상절리대 경관 설계'의 국제현상공모를 시행했다. 그 결과 당선된 설계안은 매우 파격적이었다. 한라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흘러내려 주상절리로 경화되는 지질학적 과정을, 표토를 걷어내어 드러내는 제안이었다. 더불어 전시관과 부대시설의 건축은 해안절벽 앞으로 돌출되게 앉혀서, 수십만 년 전 섬의 탄생과 연계된 대서사를 풀어놓은 계획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천연기념물의 형상변경 행위는 문화재청의 보수적인 심의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수차례에 걸친 자문회의와 설계수정 끝에 최근 조건부 허가를 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는 문화재청의 경관에 대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아마도 이러한 변화의 근저에는 '본다는 것'의 해석이 달라지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때 '본다는 것'은 존 버거(John Berger)의 이론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망막을 통해 감지되는 일차적 인지에 더불어 알고 있는 지식에 의한 인식이 총체적으로 작동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즉 설계안은 자연환경의 아름다움을 보는 서정적 감상에 더해, 땅에 적층돼 있는 서사적 풍경을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있다고 평가된 것이다. 다른 또 하나의 변화는 건축 등의 개발행위를 개발과 보존의 이분법적 대립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균형과 공존의 가능성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문화재청 심의가 절대 보존이라는 대전제 안에서 개발과 보존의 경직된 프레임을 고수했다면, 금번의 심의는 보전의 범주 안에서 개발을 허용할 수 있는 태도와 해법을 유도하고 있다.

이는 제주의 경관 관리에 연관된 각종 심의제도의 운용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관을 본다는 것의 의미나 개발과 보존의 인식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주는 이미 2009년에 다른 지역 보다 선도적인 '경관 및 관리계획'을 수립하고, 경관에 관련된 원론적 개념을 명확히 세워놓고 있다. 제주 경관의 궁극적 목표를 '서사적 풍경의 구축'으로 천명하고, 천혜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그 땅 위에 제주민이 새겨놓은 삶의 흔적, 지문(地文)까지도 경관의 범주에 놓고 있다. 이렇듯 훌륭한 경관 관리계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의 제도 시행은 정량적 규제에 과도하게 편중돼 있었다. 물론 정성적 기준이 유효하게 작동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공감과 제도 시행 주체의 성숙한 혜안이 전제돼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나, 이제는 변해야 할 때가 됐다.

올해 2021년은 경관법에 근거해 두 번째 경관 관리계획 재정비 용역이 진행 중이다. 그린뉴딜과 같은 시대변화를 경관계획에 담아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제주의 바람과 태양에서 비롯된 서사적 풍경에, 본다는 것의 의미를 더해 제주 경관의 새로운 해법을 모색했으리라 기대한다. <양건 건축학 박사.제주 공공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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