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해원의 증언 "슬퍼하면 집안 무너질 것 같았다"

4·3 해원의 증언 "슬퍼하면 집안 무너질 것 같았다"
4·3연구소 증언본풀이 4·3에 육친 잃은 정세민·고영자씨 증언
정세민 "폭도 새끼 말 들으며 자라… 그 어떤 영화보다 슬픈 삶"
고영자 "정뜨르비행장서 아버지 찾았단 소식에 살아 돌아온 줄"
  • 입력 : 2020. 11.28(토) 12:42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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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4·3평화기념관 강당에서 제주4·3연구소의 열아홉 번째 증언본풀이 마당이 이어지고 있다. 진선희기자

마치 해원의 굿판과 같았다. 청중들을 그렇게 울리는가 싶더니 웃음을 터지게 만들었다. 제주4·3의 와중에 육친을 잃은 슬픔을 삭이고 억누르며 지난 시절을 건너온 그들이었지만 이날은 마음에 쌓아두었던 감정을 드러내고 나눴다.

지난 27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강당. 제주4·3연구소(이사장 이규배, 소장 허영선)가 4·3 72주년과 한국전쟁 70주년을 기념해 증언본풀이 마당을 열었다. '4·3, 이산과 재회'를 주제로 마련한 이번 증언본풀이엔 고영자(1942년생, 제주시), 정세민(1944년생, 서귀포시)씨가 증언자로 나섰다. 당초 이순희(1933년생)씨도 증언할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런 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면서 함께하지 못했다.

정세민씨

정세민씨는 김은희 제주4·3연구소 연구실장과 대담으로 진행된 증언본풀이에서 애써 울음을 참다 결국 눈물을 보였다. 남원읍 신례리 이승악 앞 화생이궤로 피신하다 토벌대에 잡혀 눈앞에서 어머니가 창에 찔려 죽는 장면을 목격한 그는 어릴 적부터 "폭도 새끼"란 말을 들으며 자랐다고 했다. 아버지는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형을 받고 마포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는데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행방불명됐다.

주변의 모진 말에 고향을 등질 수 밖에 없었던 그는 "어디가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면서 "내가 슬퍼하면 집안이 무너질 것 같아 강하게 살았다"고 털어놨다. 뒤늦게 아버지의 사망신고를 했을 땐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연좌제를 몸소 경험한 그였다. 그는 서귀포의 어느 극장에서 영사 기사로 일할 때 '저 하늘에 슬픔이'란 영화를 틀면서 "저게 무슨 슬픔이냐"며 자신의 생을 영화로 만든다면 그보다 더 슬플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4·3을 체험한 70~80대들이 덜 병들고, 덜 죽기 전에 4·3이 해결되길 바랍니다." 4·3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기원하며 그가 증언본풀이 마지막에 덧붙인 말이었다.

고영자씨

고영자씨는 오화선 제주4·3연구소 자료실장과 대담하며 지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의 고난사는 일본에서 안경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를 따라 세 살 때 제주로 오면서 시작됐다. 1948년 봄에 잡혀갔던 아버지가 모슬포 지서에 수용되었다가 트럭에 실려 제주시로 떠난 뒤 소식이 끊겼다. 고씨가 자신의 인생 역정을 쉼표없이 전하는 동안 청중석에선 "아!"하는 호응이 끊이지 않았다. "소도리 허젠 해도 이젠 잊어부렁" 못한다고 했지만 아버지를 잃고, 극적으로 재회하는 장면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고씨는 지난해에야 아버지가 정뜨르비행장에 묻혀 있던 사실을 알았다. 숙모의 권유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채혈했는데 정뜨르비행장에서 발굴된 유해 가운데 자신의 DNA와 일치하는 게 있었다. 고씨는 아버지를 찾았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아버지가 살아돌아온 줄 알았다"고 했다. 아버지의 유해를 찾으려고 그랬던 것일까. 고씨는 아버지가 행방불명 후 처음 자신의 꿈에 나타나 돈을 주면서 바지 저고리를 해달라고 했던 일을 꺼내놓았다.

고씨는 지금껏 4·3희생자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먹고 살기 위해 타지에서 생계를 이어가느라 4·3희생자 신고 내용도, 방법도 몰랐기 때문이다. 지난 비극은 평범하게 누릴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을 그에게서 앗아갔다. 이웃에게 말하듯 담담하게 증언을 이어가던 고씨는 끝내 목이 메어 "글 모르는 거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가수 최상돈이 현장에서 길어올린 4·3 노래, 허영선 시인의 시가 낭송되며 울림을 더한 이번 증언본풀이 마당은 열아홉 번째를 맞는다. 2002년 이래 매년 4월 전후에 이어온 증언본풀이를 거쳐간 이들은 지난해까지 총 68명에 이른다. 슬프다, 억울하다 등으론 다 형용하지 못하는 그들의 사연은 저마다 다른 서사를 지니고 있다. 제주큰굿 본풀이처럼 열나흘 풀어내도 모자라고, 증언자들의 표현처럼 "소설로 메와도" 될 굴곡진 날들이다.

어느덧 두 세대를 지나왔지만 그것은 때로 문학의 상상력을 뛰어넘어 인간의 조건을 성찰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 나날들을 육성으로, 특히 제주어로 실어나르는 증언본풀이 마당은 체험자들이 고통을 견디며 평화, 인권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발화하는 현장이다. 이번은 코로나19 여파로 초대된 4·3유족을 중심으로 청중이 제한되었지만 앞으로는 청소년 등 미체험 세대와 교감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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