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말을 빼앗기는 경험”… 문학의 시작점을 묻다

[이 책] “말을 빼앗기는 경험”… 문학의 시작점을 묻다
김혜순의 『공중의 복화술』
  • 입력 : 2026. 02.19(목) 21:00
  • 박소정 기자 cosoro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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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문학은 어디서 시작할까?" 47년간 시를 써 온 김혜순 시인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1979년 계간 '문학과 지성' 겨울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언어로 여성성과 시적 미학을 탐구해 왔다. 그 만의 언어로 "슬프고도 담대하고, 우아하면서도 명쾌하게" 시 세계를 펼쳐왔다. 이에 한국인 최초로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독일 국제문학상을 잇달아 받으며 국제적으로도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아 온 작가다.

그런 시인이 '문학의 시작점'을 묻게 된 건 "문학적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됐다. 30년 넘게 대학에서 시 창작 강의를 해오며 문학적 글쓰기를 꿈꾸는 학생들을 마주한 시인은 "글을 시작하고 싶으나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요'라고 말하던 학생들에게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으며 누구나 자신 안에 싱싱한 새로움이 가득 차 있다는 것, 문학의 새로움이란 곧 글 쓰는 자신"이라고도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가 펴낸 '공중의 복화술-문학은 어디서 시작할까?'는 이처럼 시와 글쓰기에 관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시인이 2020년 가을부터 2년 남짓 문예지 '악스트(Axt)'에 연재한 산문 13편과 2022~2025년 국내외 강연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발표한 산문들 가운데 6편을 추려 묶었다. 복화술, 목소리, 슬픔, 침묵, 불안, 죽음 등 그의 시학의 핵심을 이룬 열아홉 가지 키워드로 문학의 시작점과 새로움이 발생하는 진원지를 묻고 답한다.

이 중에서도 2023년 독일 베를린 시 페스티벌에서 시인이 진행한 기조연설 'Tongueless Mother Tongue(혀 없는 모국어)'은 그러한 시인의 문체가 두드러진다. 이 글에는 1970년대 유신정권 말기 긴급조치 9호 치하에서 시인이 겪은 검열과 폭력의 기억이 담겨있다.

당시 시인·소설가·저자들의 원고는 군의 검열을 거쳐야 했다. 원고는 출판할 수 없는 글자 위에 검은 콜타르가 칠해진 채 되돌아왔다. 출판사 편집자로 일했던 시인은 그때를 회고한다. "편집자로서의 이런 경험은 나의 시 쓰기를 위축시키고, 내 시의 글자 수를 줄이며, 내 시의 리듬을 강퍅하게 만들었고, 목소리의 변조를 실행하고 내 시를 위악적으로 만들었다. 시에서 나는 나의 직접적인 경험을 죽였다. 말을 빼앗기는 경험은 내 죽음에 앞서 혀가 먼저 죽는 경험이었다. 혀에서부터 온몸으로 죽음이 퍼지는 경험이었다."

시인은 또 '고백적 글쓰기'에 대한 생각도 전한다. 그는 "고백적 진술은 글 쓰는 자의 정당성과 상처를 증명하려는 도구가 되기 쉽다"며 '대신 말하기'가 아닌 '다시 쓰기'의 과정을 거쳐야 문학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문학과 지성사.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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