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세계 문화 건설에 있어서 아무 이바지 하는 바가 없는 국가나 민족은, 국제 간 혹은 민족 간의 회합에서 발언권을 가질 수가 없는 법이다." 석주명이 1948년 2월 6일 제주신보에 남긴 글이다. 그는 또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을 인용하면서, 개인뿐만 아니라 조선의 자태(姿態)도 잘 알아야 세계 무대에서도 당당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방 이후 국가 간 교류가 확대되면서, 한국의 진정한 모습을 지켜야 하고, 특히 제주의 문화 고유성이 외래문화의 유입으로 사라질까 봐 걱정한 것이다.
1963년 11월 제주도를 방문한 IUCN 소속 국립공원 설계 전문가인 윌리엄 하트는 한라산에 대한 종합 학술조사를 권고한다. 그는 한라산에 대한 관광적·과학적·역사적 관점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탁월하다고 평가한 것이다. 이후 한라산은 천연보호구역과 국립공원으로 각각 지정되었으며, 이어서 제주도는 유네스코 5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자연적·경관적·문화적·역사적 가치를 인증받았다. 일찌감치 석주명은 1947년에 '제주도가 한라산이요 한라산이 즉 제주도이다'라고 하면서, 제주도와 한라산의 세계사적 진리를 예찬한 바 있다.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평화는 각 나라의 문화 고유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가 곧 세계인의 삶이다. 제주 사람들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 저항, 희망, 협동, 상생, 배려 등을 늘 품고 있다. 제주어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고귀하고 매력적인지를 숨김없이 보여준다. 석주명은 지역어가 소멸되면 지역의 정체성이 무너지고, 세대 간에 소통이 단절되고, 세계 시민이 되기 어렵다고 강조한 선구자이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이어, 케이팝 애니메이션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인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석주명의 예언대로 한국과 제주도의 자태가 빛나고 있다. 지난 2025년 6월, 제주도에서 열린 제주AI국제영화제에서 제주 사람들의 공동체 정신과 제주어를 모티브로 한 '렛츠 수눌음'이 최우수상을 받았다. 소멸 위기에 놓여 있는 제주어를 비롯한 제주의 문화가치는 모두의 기억과 기록 그리고 연대와 협력을 통해 지켜줄 수 있으며, 그게 곧 문화산업의 세계화를 이끄는 동력이다.
석주명은 '제주학의 아버지'라 할 만큼, 제주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1940년대에 서귀포에 머물면서, 생물학을 비롯해 제주의 인문·사회·자연 영역까지 섭렵하면서 제주학의 기초를 다졌다. 특히 그가 남긴 '제주도방언집'은 훗날 제주어 연구·보존·대중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가 머물렀던 제주시험장은 여러 차례 정비사업을 거치며 건축물의 원형이 잘 유지되고 있다. 2020년 6월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 경성제국대학 부설 생약연구소 제주시험장'의 마지막 보수정비 공사가 완료된 이후에, 석주명이 사랑한 '제주학(濟州學)'이 더 멀리 훨훨 날아가길 희망해본다. <김완병 제주학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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