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호의 하루를 시작하며] 극우 이념의 트로이 목마가 된 늘봄학교의 틈

[허수호의 하루를 시작하며] 극우 이념의 트로이 목마가 된 늘봄학교의 틈
  • 입력 : 2025. 08.20(수) 00:00
  •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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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왜 이리 성급했던가. 2024년 유례없는 속도로 늘봄학교 정책이 시행됐다. 정책 수립 1년 만에 합리적인 검증 과정도 없이 전국 초등학교로 늘봄교실을 확대 시행한 것이다. 막대한 예산과 공간 확보, 프로그램의 질, 인력수급, 그에 따른 자격관리와 검증 등 무수한 난제가 해결돼야 함에도 졸속 시행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강행됐다. 애당초 정책은 구조적이고 내재적인 취약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 영향은 고스란히 지역 교육청, 일선 학교의 혼란과 충격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취약성은 당혹스럽게도 극우 이념을 교실로 전파하는 손쉬운 출입구가 됐다.

최근 제주와 전라도의 학교, 도서관에서 4·3과 여순사건을 공산 세력의 반란으로 규정하고 친일을 미화하는 책들이 소장돼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심지어 제주에서는 4·3 당시 주민 학살이 자행돼 역사적 아픔과 기억이 서린 학교에 관련 서적이 비치돼 있었음이 밝혀졌다. 지역 공동체의 역사적 기억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모욕하는 이런 지역 선정은 우연이고 그저 사소한 해프닝이었을까?

공교롭게도 이 책들은 리박스쿨의 늘봄학교 강사 양성 교재로 활용됐던 책들이었다. 리박스쿨은 극우보수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단체임을 표방하며 사무실까지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리박스쿨 측은 한국늘봄교육연합회라는 위장단체를 만들어 서울교대와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는데 공신력 있는 기관을 앞세워 일선 학교의 경계심을 허물고 강사 투입을 용이하게 하려는 전략이었다.

현재 리박스쿨은 온라인 댓글 조작팀 활동에 참여하는 대가로 창의체험활동지도사 같은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다는 의혹으로 경찰수사를 받고 있다. 교육부의 전수조사에 따르면 리박스쿨을 통해 학교에 배치된 강사는 160여 명에 이른다. 지난 7월 열린 리박스쿨 청문회에서는 대통령실이 리박스쿨 관련 단체를 늘봄학교 사업에 선정하도록 교육부에 외압이 있었다는 교육부 관계자의 증언이 있었다. 졸속 정책을 도구로 삼아 극우 이념교육의 통로로 삼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오히려 이를 위해 졸속 정책이 필요했던 것인가라는 의심마저 드는 대목이다. 핵심적 교육기능을 합리적인 검증 없이 부실한 민간자격에 위탁했을 때 발생하는 위험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어쩌면 리박스쿨은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광복 80주년이다. 번번이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폐기된 박근혜 정권의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 논란이 떠오른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사관을 공교육에 이식하려는 시도들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교육의 중립성과 다양성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혐오를 조장하는 주장에 동등한 발언권을 주는 것이 아니다. 해방 80년이 흐른 지금도 또렷한 정신으로 교육현장을 바라봐야 할 이유이면서 한편으로 공교육이 역사 인식 형성에 얼마나 영향력 있고 핵심적 역할을 하는가를 교육계 스스로 되새겨볼 대목이다. <허수호 교육성장네트워크 꿈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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