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예술인 역량 강화'라는 말은 오늘날 문화예술 정책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표현이다. 정부와 지자체, 문화재단, 예술기관 등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워크숍, 상담, 멘토링을 통해 예술인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과연 예술인의 삶과 창작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을까?
현재 운영 중인 대부분의 예술인 역량 강화 프로그램은 기획력, 마케팅, 재정 관리, 법률 지식 등 실무 중심의 기술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창작물 유통, 저작권 보호, 자기 홍보와 브랜드 관리는 예술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모든 기술은 어디까지나 창작을 돕는 '도구'이지, 예술의 본질이나 예술가의 삶의 목적을 대신할 수 없다.
예술가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역량이란 자신이 왜 예술을 하는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예술을 통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고 싶은지를 고민하고 표현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나 직업으로만 여겨질 때, 예술가는 창작의 의미를 잃고 지치게 된다. 단순한 기술 습득만으로는 오랫동안 예술 활동을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많은 예술인은 창작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부업에 의존하고 있고 예술 활동과 병행하는 삶에 지쳐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단기 교육이나 일회성 지원은 본질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기 때문에 예술가가 지속적으로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안정적인 창작 지원금,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작업 공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연·전시 기회, 생계를 도울 수 있는 복지 제도는 필수적이다. 이런 기반 없이 '자기 계발'이라는 명목으로 모든 책임을 예술가에게 떠넘기게 된다면 오히려 예술가들을 고립시키게 될 것이다.
특히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은 단순한 창작자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기획자, 교육자, 행정 실무자, 지역 주민과 예술을 연결하는 매개자 역할까지 수행하며 복합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렇기에 단편적인 기술 교육만으로는 이들을 충분히 지원할 수 없다.
진정한 예술인 역량 강화는 예술가가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는 단기 프로그램이나 제도 개선만으로는 불가능하며, 행정과 정책, 사회와 관객, 동료 예술인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예술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회를 잇는 살아 있는 언어다. 따라서 역량 강화는 기능 습득을 넘어, 예술가가 지속적으로 창작하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함께 마련하는 일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예술인이 인간답게 창작하고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인 역량 강화의 방향이다. <김미란 공연기획자·문화예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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