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도 노고록허게" 서귀포서 25년째 이름 안 밝히고 쌀 기부

"새해도 노고록허게" 서귀포서 25년째 이름 안 밝히고 쌀 기부
"모자람 없이 넉넉하고 여유 있다"는 제주어의 의미 담아
'노고록 아저씨' 설·추석·연말 매년 3회 100포씩 익명 기부
서홍동 저소득 독거노인에 전달… "나눔 문화 확산에 노력"
  • 입력 : 2024. 02.08(목) 10:53  수정 : 2024. 02. 12(월) 11:37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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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설 명절을 앞두고 '노고록 아저씨'가 또다시 서귀포시 서홍동에 쌀 100포를 배달했다. 올해로 25년째다. 서홍동 제공

[한라일보] 서귀포에는 '노고록 아저씨'가 산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독지가가 명절 등 매해 세 차례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 위한 쌀 포대를 동주민센터에 보낼 때마다 '노고록'이란 단어가 들어간 짤막한 메모를 덧붙이면서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다.

'노고록 아저씨'의 나눔이 2024년 설 명절에도 이어졌다. 올해로 25년째다. 서홍동주민센터는 최근 보도자료를 내서 "지난 2일 설 명절을 맞아 익명의 독지가 '노고록 아저씨'로부터 쌀 100포(약 300만 원 상당)를 받았다"고 밝혔다.

8일 서홍동에 따르면 이번에도 직접 동주민센터를 찾지 않고 배달업체를 통해 쌀을 전달한 독지가는 "살암시난 혼 해가 가수다. 명절은 돌아오고 노고록하게 잘 보냅써. 노고록 아저씨"라며 제주어로 적힌 메모를 함께 적어 보냈다. 지난 연말에는 배달된 쌀에 "어두왁 볼각 살암시난 혼 해가 감수다. 새해는 더 노고록헙써"란 글귀가 붙었다.

이 독지가는 1999년부터 설, 추석, 연말 등 매년 3회에 걸쳐 매번 쌀 100포를 기부했다. 서홍동에서는 이 쌀을 관내 저소득 독거노인들에게 꾸준히 전달해 왔다.

제주도가 펴낸 '제주어사전' 개정증보판(2009)에는 '노고록허다'란 형용사의 의미를 '사람의 성질이나 물건 따위가 여유롭다'로 풀이했다. 이 사전은 '노고록이'란 부사로 쓸 때는 표준어 '노긋이'에 해당되는 어휘로 '메마르지 않고 좀 녹녹하게', '성질이나 태도가 좀 보드랍고 순하게'란 뜻을 지녔다고 했다.

송상조가 엮은 '제주말 큰사전'(2007, 한국문화사)에는 '노고록허다'를 두고 '모자라거나 마음에 켕기던 것들이 사라져 여유가 생기다', '쓸 것이 모자람이 없이 넉넉하고 여유가 있다', '마음에 모자람이 없이 넉넉하고 여유가 있다', '사람의 성질이나 물건 따위가 여유롭다' 등의 의미로 쓰인다고 했다. 같은 사전에서 '노고록이'는 '양이나 넓이 따위를 좀 더 넉넉하고 여유있게', '마음에 모자람 없이 넉넉하게'로 풀었다.

이 같은 제주어 뜻처럼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좀 더 넉넉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20년 넘게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노고록 아저씨'가 누구인지를 두고 일각에서는 지역의 원로가 거명되고 있다. 이와 관련 서홍동 측은 "이름이 밝혀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전해 들었다"면서 "언젠가 공개될지는 모르겠으나 서홍동에서는 '노고록 아저씨'가 꾸준히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주심에 감사드리며 나눔 문화가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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