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의 문화광장] 사라진 건축, 기억은 오래 그곳에 남아…

[양건의 문화광장] 사라진 건축, 기억은 오래 그곳에 남아…
  • 입력 : 2023. 04.18(화) 00:00
  •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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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건축과 도시는 결국 무너지고 만다. 오로지 기억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 선배 건축가의 글이다. 건축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생명성은 결국 기억에 수렴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 기억에는 각 개인이 도시의 장소와 건축을 촉각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존재와 연계된 성찰적 체험이 전제된다. 즉 기억은 건축의 물리적 실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돌아보면 안타깝게도 도시민에게 아름다운 기억을 남겼던 제주의 건축들이 생명을 다했다. 김중업 선생의 제주대학교 본관, 멕시코의 거장 레고레타의 카사 델 아구아, 원도심의 구 제주시청사와 현대극장 등 주옥같은 건축들이 건축 문화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라져 갔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도 구 제주시민회관, 서귀포 극장 등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렇다면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건축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그런데 사라진 건축이 남긴 공허함은 기억을 남기기 위한 두 방향의 움직임을 촉발한다. 예를 들어 철거 직면에 놓인 구 제주시민회관의 경우, 새롭게 들어서는 건축에 기존의 철골 트러스를 이용하도록 현상공모 지침이 제시됐고, 철거 전 철저한 기록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사라지기 전 건축의 기억을 남기려는 긍정적인 노력이다. 반면 다른 한편에는 사라진 건축을 복원 또는 재건하려는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최근 제주대학교는 개교 70주년을 맞이해 구 제주대학 본관을 재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렇듯 제주에서 도시의 사라진 건축에서 기억을 지속하려는 최근의 경향은 건축가로서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특히 근대 건축의 거장 르 꼬르뷔지에의 제자인 김중업 선생의 대표작으로, 제주대학교 본관의 재건 소식은 의미 있다. 이 건축은 1964년 설계가 시작돼 구조상의 안전 문제로 1995년 철거됐으니,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는 드물게도 25년 만에 단명한 건축인 셈이다. 향후 논의되어야 할 과제가 많겠지만, 이 소식에 레퍼런스로 떠오르는 건축이 있다. 또 한 분의 근대 건축 거장 '미스 반 데 로에'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이다. 1929년 바르셀로나 만국 박람회의 독일관으로 사용됐던 임시 건축물로서 행사 후 철거됐다가, 50여 년이 지난 1986년에 재건된다. 그런데 왜 우리는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에서 미스의 파빌리온을 찾게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근대 건축의 시대정신으로서 아우라에 건축가는 물론 일반 시민들도 감동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 김중업의 건축이 재건된다면 한국적 근대 건축의 표상으로서 기억을 드러내어야 한다. 또한 제주 땅에 지어졌으니 어떠한 시대정신을 담고 있었는지 제주 건축 역사 위에 포지셔닝 돼야 한다. 70년대 후반 중학교 미술부 시절, 사생대회 준비로 이 건축을 수도 없이 스케치했던 추억이 있다. 비록 그 장소는 달라지겠지만 흔들린 곡선의 경사로를 따라 걸었던 오랜 기억은 아직도 그곳에 남아있다.<양건 건축학박사·가우건축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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