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정의 하루를 시작하며] 이태원에 묻다

[김문정의 하루를 시작하며] 이태원에 묻다
  • 입력 : 2022. 12.07(수)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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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가을 초입, 이태원을 걸었다. 가족행사가 낀 늦은 휴가. 일요일 오후, 거리는 밤새 내놓은 쓰레기로 조금은 어수선하고 삭막하다. 그래도 젊음은 참 예쁘구나, 시에서 특별히 청소 인원을 추가 배치하면 좋겠네… 걷다가 점심을 먹고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신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찻집. 아직 뜨거운 가을 햇살이 내리는 테라스 테이블 사이사이 아름드리 그늘이 좋은 정원이다. 전시를 보고 리움에서 나와 다시 조금 걸어, 건물 숲을 지나 언덕의 작은 골목들 사이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카페에 들러 차를 마셨다. 단조롭고 소소하지만 행복한 하루였다. 하지만 이제, 마냥 좋지 않다. 10·29참사 이후, 맑았던 그날의 추억 끝에 때아닌 소나기를 만났다.

길을 걷다가 사람들이 죽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나. 알다시피 서울은 여태껏 큰 사고 없이 잘 모이고 잘 흩어지는 성숙한 시민의 도시다. 딱 그날, 그 골목이 아니었을 뿐 우리도 거기서 죽을 수도 있었다. 그저 걷다가. 그들도 우리처럼 간만의 나들이, 단 하루 꿀맛 휴가였을지도 모르는데. 마치 꿈인 듯, 꿈이라 해도 이 얼마나 나쁜 꿈인가.

타인의 죽음을 능욕하는 무지막지한 막말들.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어디서 오는가. 외래문화 운운도 어처구니없다. 때는 21세기다. 하늘 아래 고유한 것이 있기는 한가. 놀러 가면 안 되나. 누구나, 우리는 모두 논다. 봄여름가을겨울, 소풍, 현장학습, 수학여행, OT를 가고 콘서트와 공연을 보고 방방곡곡에 지역축제가 열린다. 단풍놀이, 해맞이를 가고 거리응원도 하고 귀성객이 몰린다. 어디든 사고위험이 있는데 각자도생인가. 국가의 무한책임은 수사(修辭)이고 수사(搜査)인가.

부고가 뜨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마음을 담는다. '근조'를 뒤집어 달고 영정과 위패 없는 분향소를 만드는 기상천외한 발상은 어디서 왔을까. 다 같이 애도하자면서 맘껏 슬퍼할 자유를 지정하고 입 다물라 윽박지르는 '국가애도기간'.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니 슬픔은 가식적이다. 위로는 공허하다. 구호하던 이들은 자책으로 가슴을 치는데 지휘책임 없다는 장관과 그 어깨를 토닥이는 대통령. 하물며 사람들이 죽었는데 사과가 없다.

길에서 가족을 잃었다. 물음표만 가득인 황망한 사망진단서를 쥐고 이제야 묻는다. 이유 모르는 죽음이 억울하다. 오명은 더 억울하다. 묻는 게 당연하다. 유족들은 반정부 세력이 아니다. 왜 자꾸 유족에게까지 정치색을 입히며 편 가르고 고르고 방치하고 소외시키나. 충분히 소리 내어 울게 하라. 서로 소통하고 슬픔을 나눌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필요하다. 성역 없는 엄격하고 철저한 책임규명과 온전한 기억의 재구성, 아낌없는 추모만이 위로다. 10·29참사에 158건의 사망사고로 저마다 값지게 피어나던 158개의 세계가 멈췄다. 그날은, 지금은 왜? 인가. <김문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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