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2)서귀포시 예래마을

[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2)서귀포시 예래마을
자연자원의 가치가 살아 숨 쉬는 생태마을
  • 입력 : 2022. 06.10(금) 00:00
  •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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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일이다. 한국반딧불이연구회가 서귀포시와 손잡고 예래천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반딧불이 보호지역'으로 지정했을 때, 주변 마을주민들의 반응은 '그 조그만 벌레가 그렇게 대단하냐?'는 의문스런 반응이었다. 마을의 입장에서는 역사적인 각오와 결의가 담겨진 소중한 가치의 전환점이었던 것이다. 생태계가 살아 있느냐 없느냐를 가늠하는 반딧불이를 통해 퇴로 없는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지금 쯤 나타나서 7월 중순까지 예래천의 밤을 날아다니는 파파리반딧불이와 8월 중순에서 9월 중순까지 나타나는 '늦반딧불이'는 예래생태계가 최고 수준으로 보존되고 있음을 입증해주는 완벽한 입증근거다.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자연환경을 지키고 생태자원을 온전하게 후손에게 물려주겠다는 다짐. 난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는 섬 제주의 현실에서 마을주민들의 놀라운 의식의 발전은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찌든 현실에 크나큰 경종을 울려줬던 것이다. 이러한 의지와 노력들이 지속적인 생태환경 관련 마을사업들을 통해 차츰차츰 결실을 맺어가는 과정이다. 예래마을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생태'가 됐으니 성공신화의 서막이 올랐다는 표현은 결코 과하지 않다.

'열리'라고도 부르는 마을이다. 굴메오름(군산)을 열리에서 바라보면 사자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사자가 왔다'는 의미의 예래(猊來)다. 역사 기록 이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생존의 터전. 고인돌 15기가 마을 여러 곳에 널려있다. 필자가 안타까워 하는 고인돌은 동산밭어린이집 담장 옆 성혈식 고인돌이다. 별을 상징하는 움푹 파인 곳이 여럿 있는 그 존재가 의미하는 바 무엇이랴. 별을 사유하고 의식의 영역으로 불러올 수 있었던 세력이 살았던 증거자료임에도 그냥 표지판 하나 덩그렁 하게 세워졌을 뿐이다. 대왕수천에서 예래천 사이 지역을 발굴한 자료에 의하면 신석기시대에서 탐라국시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살았던 주거지 71동이 드러났다. 마을이라고 할 수 있는 규모의 사회가 형성돼 있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풍부한 물과 농경과 수렵, 어로가 용이한 천혜의 공간에서 자연과 하나 돼 살아가던 그들을, 예래에 가면 풍요로운 상상 속에서 만나곤 한다. 생태 탐방로 곳곳에 선사인들의 생활하는 모습을 담은 조각상이 있으면 더욱 자연친화적 느낌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가장 독특한 예래마을의 강점은 변화무쌍한 뷰포인트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해안과 가까운 마을임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토록 많은 마을은 섬 제주 어디에도 없다. 자연스럽게 웃가름 지역과 알가름지역으로 생활공간이 만들어지고 취락구조 또한 독특한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이다. 농경에 있어서 경사는 지독한 극복의 대상이다. 밭을 만드는 작업에서부터 경작지까지 이동하고 짐을 져서 나르는 일까지 조상들의 부지런함과 끈기가 없었다면 오늘의 풍요로운 예래마을은 없었을 것이다. 반면, 휴양 경관 자원으로써는 최고의 가치를 발휘한다. 생태관광을 기반으로 다양한 숙박시설이 있는 것은 마을 주변을 걷기만 해도 시각적 만족감을 향유 할 수 있으니 탐방객들의 선호도가 높은 것.

마을 주민들의 결집력과 실천역량은 자연자원과 공간적 환경을 활용해 다양한 축제를 성공적으로 펼쳐나가고 있는 모습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논짓물 축제와 체험축제, 등축제와 같은 방문객을 불러드릴 콘텐츠 개발에 힘쓰고 있는 모습에서 유서 깊은 마을의 역사성과 공동체의식을 자부심으로 드디어 생태마을 뒤에 '문화'가 함께하는 예래생태문화마을이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예래마을 주민들처럼 미래지향적인 발전 전략에 함께 힘 모아 나서는 방법과 목적의식이 없다면 아무 가치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필자가 정녕 부러운 것은 자연자원 못지않은 마을 사람들의 의식수준이다. 애향심에서 비롯한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 차곡차곡 쌓여서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더 나은 내일을 열어가는 모습을 발견한다. "사자가 왔다!" 맹수의 왕 사가가 와서 최고가 되는 길을 가르쳐 주는 모양이다. 마을만들기의 최고가 되려면 예래마을 가서 배우라.

<시각예술가>

빌렛거리의 유월
<수채화 79㎝ × 35㎝>

새마을금고에서 열리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다보면 남북으로 난 소보리당로와 만나 네거리를 이룬다.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서있는 한 대의 경운기를 만났다.

요즘 80세 어르신도 현역 농부임을 과시하기 위하여 끌고 밭일을 나가신다는 저 경운기. 새마을운동 시기에 농촌에 보급되기 시작한 경운기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만약 저 경운기의 주인이 상상하던 그대로 여든 살 어르신이라면 20대에 초가를 헐어 슬레이트집을 지었으며 마을 안길을 버스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확장시키는 데에 젊음을 바쳤을 것이다. 농촌의 발전사와 함께 해온 인생들을 불현듯 저 경운기에서 반추하게 되는 이유를 그렸다.

더욱 정겨운 것은 예래마을 주민들의 품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정원수들의 모습이다. 마을회의 결의 사항도 아니며, 누가 시킨 일도 아니다. 집집마다 잘 관리된 나무들이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웃집, 길 건너 집에서 고개를 내민 나무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처럼 보이니 길 전체가 아름답게 장식된 것이다. 결코 작위적이지 않은 소박한 마을 안길 풍경. 획일적인 가로수들보다 얼마나 아름다운 자발적인 취향들인가. 모름지기 경쟁심도 있었으리라.

나무 키우는 것은 이웃집 누구보다 자신 있다는 자부심. 네거리 이름 또한 얼마나 제주의 멋을 풍기는가? 빌렛거리! 암반지대를 정리하여 길을 내서 통행에 불편이 없도록 만들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이름으로 보인다. 돌담과 블럭담장이 공존하면서 묘한 세대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길이 여기 있다.



대왕수천에서 사자의 포효를
<수채화 79㎝ × 35㎝>

매해 이 냇가는 이맘때, 스스로 초록축제를 열어 온갖 새들이며 벌레를 초대한다. 멀리서 구경하는 사자는 너무 작은 놈들이 노는 곳에 가려니 체면이 구겨질까봐 지는 햇살에 노근하여 하품하고 있고. 이해가 가지 않은 구석이 있다. 옛날 왕조시대엔 지명에 왕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불경스럽게 생각하여 멀리하거나 못 쓰게 했다는 속설이 있거니와 왕도 아니고 앞에 대(大)자 까지 붙여서 대왕수천이라고 해도 관아에서 뭐라고 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뭐라고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자. 워낙 예래 양반님들이 파워가 막강하여 예외조항을 적용했으리라는 즐거운 상상. 생태마을의 상징적 모습을 그렸다. 깊고 웅장한 계곡의 느낌 속에 한줄기 물이 흐르는 실경을 접하는 마음이 흐뭇하여 붓놀림도 상쾌하다. 저 초록세상 안에는 반딧불이가 밤을 기다리고 있으며, 어리연꽃과 애기범부채, 꽃창포 같은 희귀식물도 살고 있다. 단순하게 자연자원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예래의 혼'이며 자연보호를 위한 치열한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다. 구경꾼은 한 번 지나치고 말지만 숱한 개발 유혹을 뿌리치고 이 자연생태계를 지켜내는 마을공동체의 의지를 미력한 화면에 그리고 있는 것이다. 솟아나는 물과 흐르는 물이 공존하는 대왕의 냇가- 대왕수천. 이 지점에 서 있으면 파도소리와 냇물소리가 함께 들리는 경우가 있다. 비가 많이 오면서 너울파도가 크게 밀려오는 날. 그런 날을 기다려 달려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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