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 밥상을 탐하다](5)'해녀의 집'에서 만나는 음식

[제주해녀 밥상을 탐하다](5)'해녀의 집'에서 만나는 음식
생동감 넘치는 물질모습·숨비소리는 천연 조미료
  • 입력 : 2017. 10.30(월) 20:00
  •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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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해녀밥상과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실제 그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가 밥상을 마주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런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공간은 지역마다 있는 '해녀의 집'을 찾는 것이다. 현재 제주도내 어촌계는 대부분 '해녀의 집' 간판을 내건 어촌계식당과 직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해녀들이 생산해 낸 상품을 판매하거나 공동으로 음식을 만들어 식당을 운영해 수익금을 분배하는 등 제주해녀의 경제적 가치향상과 해녀문화 보전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곳에서 만나는 밥상은 어떤 느낌일까.



▶성산일출봉 경관 품은 '어뭇게' 해녀의 집=최근 취재팀은 성산일출봉과 맞닿은 어뭇게 해안에 자리잡은 '해녀의 집'을 찾았다. 다양한 메뉴 중에서 이들이 내놓은 음식은 문어숙회와 전복죽. 이곳에서 만난 해녀들은 10일에 한번씩 당번제로 음식을 하고 있다. 이곳의 특별함은 직접 해녀노래를 하고 물질을 하는 모습을 관광객들이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산해녀들의 모습. 사진- 김희동천 기자

현장을 찾은 날에도 관광객들이 대거 이곳을 찾았다. 하지만 물질을 하는 모습을 열심히 셔터에 담아낼 뿐 음식을 먹는 것으로 연결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이 지역 출신인 고순자(71) 해녀는 50년 넘게 물질을 해온 터줏대감이다. 고씨는 "예전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올 때는 사람들이 많이 왔지만 지금은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음식점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줄었다"고 말했다.

음식점·직매장 운영 해녀 당번제
진상·수탈 대상 전복죽 대표 음식
미역·문어 등 싱싱한 해산물 가득


식당 바로 앞에는 해산물을 판매하는 좌판이 놓여져 있다. 이곳을 지키는 이들도 모두 해녀들이다. 이곳은 철저하게 '공동체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고씨는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당번을 서고 있는데 자신이 오지 못할 경우 대신 일할 사람을 선정해야 한다"며 "오랫동안 지켜온 원칙"이라고 말했다.

전복죽

전복죽을 내놓기 위해 미리 쌀을 전복내장에 볶아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미리 끓여두면 쌀이 풀어져서 맛이 없어서 미리 쌀을 볶아두고 1인분씩 주문이 들어오면 그자리에서 죽을 끓이는 것이 이들의 음식비결이다.

밑반찬은 많지 않지만 로컬푸드로 정갈하게 차려졌다. 미역과 호박무침, 콩나물무침, 김치, 톳무침이 밑반찬으로 나와서 바다내음을 더욱 배가시켰다. 특히 생톳을 무친 반찬은 계속 손이 갔다. 호박도 주변에서 수확한 제주호박을 재료로 요리한 음식이다.

▶해녀들은 먹지 못했던 전복죽=해녀들은 무거운 삶의 무게를 양 어깨에 짊어진채 망사리와 빗창을 들고 바다로 향했다.

수심 10m 이상의 바닷속까지 잠수해 2분이 넘는 동안 숨을 참으며 바다와 씨름을 했다. 목숨을 담보로 위험을 무릅쓰고 작업해 망사리를 채우고 나오는 해녀들의 모습은 보는 이들을 먹먹하게 한다.

밑반찬으로 나온 미역

해녀들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바다의 해산물들을 채취해 왔다. 소중한 생명의 숨이 깃들여 있는 음식, 해녀의 밥상은 바로 생명의 밥상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그들은 정작 채취한 전복을 자신의 입에 넣지 못했다. 해녀의 집에 필수메뉴의 하나인 '전복죽'. 지금은 흔해 보이지만 해녀들은 감히 전복죽을 해먹지 못했다. 임금님에게 진상해야 했고 수탈의 대상이었고 아이들을 키울 '돈'이었기 때문이다. 해녀들은 "전복은 체내흡수율이 높아 임산부, 어린아이, 노인의 영양식으로 좋다"며 "이 곳의 전복죽은 그 어느 곳과 비교해도 맛을 장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복은 해녀들이 잡는 해산물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이를 활용한 음식도 다양하다.

▶'물꾸럭' '뭉게'로 불렸던 문어에 담긴 사랑=숨이 귀했던 해녀에게 돌에 붙어있는 문어를 떼어 잡는 것은 물숨을 먹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삶은 문어

'물꾸럭' '뭉게'라고도 불렸던 문어는 삶아서 숙회로 먹기도 하고, 때론 아이의 죽이 되었고, 제사에는 젓갈이 되었다. 홍순자(65) 해녀는 "문어를 삶을 때 식초를 조금 넣으면 색깔이 예쁘게 나온다"며 "너무 오래 삶으면 질겨질 우려가 있으니 살짝 삶는 것이 중요하다"고 알려줬다. <취재=이현숙·손정경 기자, 사진=김희동천 기자>











문어를 잡은 해녀.



음식에 대해 설명하는 고순자 해녀.



문어숙회를 하기 위해 문어를 잡은 홍순자 해녀.



예테보리서 기획전 준비 중인 고민정 디렉터

"고향 제주해녀 삶·음식 스웨덴서 알리고파"



기획전서 사진전·'물숨' 상영
해녀음식 관련 자료 전시 원해


고민정 스웨덴 큐레이터

"제주해녀의 삶과 밥상에 대한 이야기를 스웨덴에 널리 알리고 싶어요."

'제주 해녀'의 손녀로 지금은 스웨덴에서 기획그룹 글로벌 탄트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민정(45) 디렉터. 제주출신인 그가 스웨덴에서 제주해녀문화를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글로벌 탄트가 주관한 영화제에서 고희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물숨'을 상영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스웨덴에서 '물숨'이 국영방송 전파를 탔고 해녀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탄트'는 우리말로 '아줌마'를 뜻하는 스웨덴 말이다. 나름의 문화를 구축한 아줌마 집단을 의미하기 위해 이름붙였다. 그 첫 아이템이 '해녀'였던 셈이다.

그가 최근 고향 제주를 찾았다. 이번 방문 목적은 내년 2월부터 8월까지 그가 기획해 열리는 기획전에 선보일 해녀들의 물질 도구와 소품 등을 구하기 위해서다. 스웨덴 예테보리에 위치한 시립박물관에서 열리는 기획전에는 김형선 작가의 사진작품이 전시되고 다큐 '물숨'이 상영된다. 이와 함께 해녀들이 사용했던 다양한 도구 등이 전시된다.

그는 이번에 해녀문화보전을 위해 김순이 시인이 소중히 보관해온 소품들을 전시할 수 있게 됐다. 물안경(눈), 물소중이, 물수건, 까꾸리, 종개 호미, 빗창, 태왁 등을 빌리기로 했다. 김 시인이 모두 40여점을 기꺼이 전시품으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전시가 펼쳐질 예테보리 시립 해양박물관은 어린이,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은 곳이다. 해양문화가 강한 스웨덴에서도 도시화·산업화로 사라진 어촌 커뮤니티에 향수가 있어 화제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어 고씨는 "해녀들의 에너지원이 됐던 해녀음식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며 "최근 상생, 친환경, 다문화 등에 대한 이슈가 많아 해녀문화와 음식에 대한 내용도 추가로 전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에 와서 이곳저곳을 둘러봤는데 전시에 앞서 해녀를 지켜준다는 '당'에 가서 빌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할머니의 숨비소리를 기억하면서 이번 전시회를 준비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현숙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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