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떵살암수과]김인규 전 제주대 예술학부장

[어떵살암수과]김인규 전 제주대 예술학부장
"제주는 제꿈을 펼친 제2의 고향"
  • 입력 : 2012. 03.24(토) 00:00
  • /문기혁기자 ghmo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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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전 제주대 예술학부장은 남은 인생 후반전을 사회와 함께 재능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강경민기자

제주음악의 산증인으로 걸어와
"남은 인생 사회와 함께하고 파"

지난달 29일 제주그랜드호텔에서는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음악회가 열렸다. 그 주인공은 바로 정년퇴임을 앞둔 김인규(65) 전 제주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음악학과 교수. 떠나는 스승을 위해 제자들이 마련한 이 음악회는 30여년간 제주 현악의 발전과 후학 양성을 위해 열정을 다한 김씨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실제로 김씨는 제주 현악, 특히 실내악에 있어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1981년 제주대학교에 음악학과의 전신인 음악교육과가 처음 설립되면서 학과장으로 부임했으며, 이후 인문대학 음악학과로, 다시 예술학부로 명칭이나 소속이 빠뀔 때마다 초대 학부·학과장 자리는 항상 그의 몫이었다.

"비록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음악인으로서의 꿈을 펼칠 수 있었던 제주는 제2의 고향"이라는 김씨는 제주에 내려온 이후 '처음'이라는 어려운 길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나갔다. 1984년에는 제주 최초의 순수민간예술단체인 제주실내악단(현 제주체임버오케스트라)을 창단하면서 실내악이라는 새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던 그다.

김씨는 "처음 제주에 내려와 음악교육과 학과장으로 부임했을 때만 해도 바이올린이 무슨 악기인지 아는 사람이 드물 정도였다"며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다. 하지만 음악교육과 설립을 계기로 제주에 현악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1987년 제주도립 제주교향악단이 정식 창립되고 제주체임버오케스트라와 제주윈드오케스트라 등 민간예술단체가 속속 설립되면서 제주 음악은 양적·질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뤄냈다.

이처럼 김씨를 비롯한 많은 음악인들의 노력으로 제주 음악은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김씨는 현재의 제주 음악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인적 자원과 공연 시설을 비롯한 외적인 인프라는 눈에 띄게 성장했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내적 성장은 미미했다는 아쉬움이다.

"미국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에요. 푸른 잔디로 뒤덮인 공터에서 즐겁게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돗자리를 펴놓고 각자 싸온 음식을 먹으며 편하게 음악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에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음악이 그들의 실생활에 가깝게 자리잡고 있더라고요. 이런 모습들은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제주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부분들이고, 제주의 관광산업과 접목시킨다면 질 높은 문화관광으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거라 생각합니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후원만 받쳐준다면 제주 음악은 내적인 성장과 함께 문화관광산업으로서의 가치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제주에 내려와 지금까지가 전반전이라면 이제부터 남은 인생까지는 후반전"이라고 표현하는 김씨는 은퇴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도 넌지시 얘기했다.

그는 "이제는 교수라는, 학부장이라는 큰 짐을 내려놓은 만큼 좀 더 가볍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작은 곳에서부터 본인이 가진 재능들을 나누고 싶다"며 "제주 사회를 위해서 그리고 제주 음악을 위해 기여하고 봉사하는 게 마지막 목표이자 바람"이라고 말했다.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건 화음입니다. 저는 그동안 지도자나 지휘자로서 화음을 조율하는 역할이었죠. 이제는 화음을 맞추는 구성원으로 그 속에서 사회에 기여하고 함께하는 조화로운 삶을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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