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병의 목요담론] 용의 해, 누구나 용솟음칠 수 있기를

[김완병의 목요담론] 용의 해, 누구나 용솟음칠 수 있기를
  • 입력 : 2023. 12.07(목) 00:00  수정 : 2023. 12. 07(목) 16:00
  •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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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이형상 제주 목사가 남긴 ‘탐라순력도(1702년)’를 보면, 지금의 용연과 용두암 일대를 그린 '병담범주(屛潭泛舟)'에 두 군데의 용두(龍頭)가 그려져 있다. 당시 목사와 판관이 취병담(翠屛潭)에서 뱃놀이를 즐기고 있으며, 용 두 마리가 호위무사로 지키고 있다. 마치 용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기라도 하듯, 제주 목사의 지위와 위엄이 엄청났으리라 여겨진다. 용연에서 놀지 못한 용이 하늘로도 올라가지 못해 용두암으로 생을 마감한 곳이다.

모자를 쓴 선비들이 오락을 즐기는 사이, 용두암 근처에선 잠녀 5명이 태왁과 망사리를 부여잡고 물질하고 있다. 신분의 차이가 용납되던 시대라지만, 제주 해녀들의 부지런함과 강인함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다. 용들이 관리들을 대신하여 잠녀들의 무사 안녕과 풍부한 해산물 수확을 염원해 준 덕분에, 제주 해녀의 물질이 세계무형문화유산과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는 시금석이 됐다. 저승에서 물질을 해야 했던 해녀들의 안위를 용왕님께서 보살펴주셨기에, 제주 해녀들은 용심 내지 않으면서 가족의 부양과 국가의 곳간을 책임질 수 있었던 것이다.

2024년은 용의 해다. 용은 십이지간 중에 실제 동물이 아니지만, 물을 관장하는 신이다. 제주에선 용왕 할망과 막내딸인 거북이가 영등굿과 잠수 굿을 통해 민간 신앙으로 전승되고 있다. 용왕의 사자(使者)인 거북이가 인간 세상으로 나오면, 성심성의껏 모시는 풍습이 남아 있다. 제주 곳곳에도 용과 거북이와 관련한 지명,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한경면 용수리(龍水里)에 위치한 당산봉 정상에 가면 거북바위를 만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오름 자체가 거북이 형상이기도 하다.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차귀벵듸에 살던 백중은 거북이를 잘 달래서, 큰 화를 막아냈다. 어쩌면 그 거북의 은혜를 잊지 못해, 당산봉이 거북으로 환생한 게 아닌가 싶다.

'용수 여잔 새벡이 듬북 한짐 안 하민 조반 안 먹나'라는 제주 속담이 있다. 한경면 용수리 여자들은 새벽에 해안가에 가서 거름용 해초를 한 짐 가득 채취한 다음에야 아침밥을 먹는다고 한다. 어디 용수리 분들만 그럴까. 제주 사람들은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생업을 꾸려가야 했기에, 한시도 게을리할 수가 없었다. 비옥하지 못한 땅에서 수확량을 늘리려면 열 번이라도 듬북을 날라야 했다. 숱한 시련과 고초를 겪으면서도 성실함을 잃지 않았기에 바닷속 용왕도 승천하려던 용도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거북의 단짝인 토끼를 보내고, 거북이처럼 상서로운 용의 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비장해야 한다. 도민을 위한 제주의 미래 청사진이 용두사미로 가서는 곤란하다. 세상만사가 떳떳하고 술술 풀려야, 누구나 용처럼 승천할 수 있다.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엔 민초의 애환을 일일이 살피지 않아도 백성들이 용서했지만, 첨단 시대엔 모두가 한 몸 한뜻으로 배를 저으면서 용연야범(龍淵夜泛)을 즐겨야 한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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