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제주서 처음 달린 '급행버스'… 교통편의 '갈 길 멀다'

[르포] 제주서 처음 달린 '급행버스'… 교통편의 '갈 길 멀다'
안내도우미 팸플릿 보며 안내…노선 숙지 미흡
급행·환승 체계 등 시스템 몰라 이용객 불편
외국인관광객 나 몰라라? 외국어 서비스 엉망
  • 입력 : 2017. 08.27(일) 14:15
  • 손정경기자 jungks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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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행버스 내에서는 환승정류장이라는 표시도 없이 덩그러니 정류장 이름만 영문명으로 안내되고 있다. 사진=손정경기자

대중교통체계 개편 시행 첫날인 26일 오전 9시 30분. 제주국제공항에 준비됐던 공항 경유 버스노선 안내 팸플릿 2000부는 벌써 동이 났다. 국내선 도착 게이트 앞에 배치된 4명의 안내도우미는 잠시 앉을 틈도 없이 몰려드는 버스 이용객들의 노선 문의에 답해야 했다.

"목적지가 어디시죠?" 기자가 교통체계 개편에 맞춰 제주지역에 처음 도입되는 급행버스를 타보려고 노선도를 확인하고 있을 때 안내도우미가 친절히 말을 걸어왔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서귀포버스터미널을 목적지로 말하자 안내도우미는 얼른 손에 들고 있던 팸플릿의 노선도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노선을 완벽하게 숙지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옆을 살펴보자 다른 3명의 안내도우미 모두의 손에도 팸플릿이 들려있었다. 문의가 있을 때마다 그들은 팸플릿을 펼치기 바빴다.

안내를 받아 애월, 한림을 지나 서귀포버스터미널로 운행되는 102번을 탔다. 버스는 도착 예정 시간인 10시 50분에 정확히 도착했다. 버스에 오르자 하얀색 정복을 입은 버스기사가 승객을 맞았다. 무료 공용 와이파이 서비스도 훌륭했다.

11시 43분 한림 환승정류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이번에 도입된 급행버스의 개념이 생소한 노인 몇 분이 노선에 대해 묻자 버스기사는 "거기 안 가요"란 무성의한 대답만 던지고는 서둘러 출입문을 닫아버렸다. 신경질적인 버스경적 울리기도 여전했다. 대정읍 환승정류장으로 가는 길목에선 길을 잘못 들어 돌아 나오기도 했다. 결국 버스는 도착 예정 시간인 12시 47분보다 10분 늦은 12시 57분에야 서귀포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제주시로 넘어오는 길엔 일주도로를 이용하는 101번을 탔다. 첫날 운행 소감을 묻자 기사는 "정해진 운행시간도 맞춰야 하는데 아직 길도 헷갈리네요"라며 "이틀 정도 지나면 완벽히 적응될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길이 헷갈리기는 승객도 마찬가지였다. 종점인 제주국제공항까지는 14회 정차한다. 함덕환승정류장 등 다수의 환승정류장에서 정차하지만 해당 정류장에서 환승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따로 없다. 승객이 기사에게 자신의 목적지를 말하고 어느 환승정류장에서 환승해야 하는지를 일일이 물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의 경우 상황이 더 심각하다. 외국어로 된 버스노선 안내도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버스 내 안내판에도 단지 정류장 이름만 영문으로 표시되고 있어 버스노선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가 환승정류장인지조차도 알 길이 없었다. 만장굴 등의 관광지를 방문하려면 관광객은 세화리환승정류장에서 하차해야 하지만 버스 내 안내전광판에는 단지 영문명 'Sehwa-ri'만 나타날 뿐이었다.

환승체계도 문제였다. 관광객 안미혜(30·서울)씨는 공항에 가기 위해 김녕환승정류장에서 101번으로 환승했는데 앞서 탔던 버스기사가 하차태그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 그냥 내렸다가 4000원을 더 지불해야 했다. 안 씨는 "오늘 버스체계를 개편했는지도 몰랐고 함께 온 어머니와 함께 하차태그를 해야 하는지를 몇 번이나 물어봤는데 안 해도 된다고 하더니 결국 어머니와 둘이 돈을 추가 부담했다"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공항에 도착하니 안내도우미에 문의하려는 버스이용객 줄은 여전히 길게 이어져 있었다. '괜히 멀쩡한 노선을 바꿔놔서는…' 하는 불평도 곳곳에서 들려왔다. 제주도가 목표한 '더 빠르고, 더 편리하고, 더 저렴한' 대중교통체계의 연착륙은 멀고도 험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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