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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발달장애가 삶의 '장애' 되지 않는 제주를 위해"
[발달장애, 그 보통의 삶] ⑦ 에필로그 <끝>
제주도, 지난 2014년 발달장애인 지원 조례 제정에도
기본계획·실태조사 전무… 욕구 반영 정책 추진 한계
올해 5개년 지원계획 수립 착수… 정책 추진 의지 중요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22. 09.21. 14:51:55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로 이름을 알린 발달장애인 배우이자 화가 정은혜씨가 지난 8월 서울 종로구 갤러기 토포하우스에서 연 그림전. 개인전 제목은 '포옹'이었다. 사진=연합뉴스

[한라일보] "요즘에는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장애가 있어도 학교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연애하고, 그렇게 사는 '보통의 삶'을 말합니다." (강경균 제주시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장)

"어렵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차근차근 준비하면 자립할 수 있을 겁니다."(자폐성 장애인 김대권 씨)

"(발달장애인·뇌병변장애인 대상)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진행한지 만 3년이 되면서 장애인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변화가 보입니다. 우리 사회 안에서 조금씩만 관심을 가지면 장애가 있어도 충분히 혼자 살 수 있을 겁니다." (임주혜 제주시장애인지역사회통합돌봄지원센터 팀장)

한라일보 기획 '발달장애, 그 보통의 삶'의 시작에는 이러한 말들이 놓여 있다. 장애가 있어도 남과 다르지 않게 살아가는 '보통의 삶'을 향한 물음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선 여전히 아득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동안 발달장애인과 그 부모가 겪는 돌봄 부담부터 학교 교육, 취업, 자립 등의 문제를 살폈다. 이들이 짊어진 일상 속 어려움을 몇 가지 꺼내놓는 데 그친 한계가 있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은 한 곳을 향했다. 다른 장애 유형보다 개인의 특성과 장애 정도의 차이가 큰, '발달장애인'에 맞는 지원 계획 수립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제주만 놓고 봐도 이 같은 움직임은 부족하다.

2014년 제정된 뒤 2015년과 2019년 일부 개정돼 시행돼 온 '제주특별자치도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조례'. 2015년 7월 조례가 일부 개정되면서 발달장애인 복지향상을 위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현재까지 관련 계획은 전무한 상태다.

|2014년 조례 제정에도 '발달장애인 지원 계획' 전무

'제주특별자치도 발달장애인 지원 조례'는 지난 2014년에 제정됐다. 이후 2015년과 2021년 일부 개정돼 '제주특별자치도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조례'로 시행되고 있지만 허울 뿐이었다. 조례에는 '도지사는 발달장애인의 권리보장과 자립 지원을 위해 제주특별자치도 발달장애인 복지향상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여전히 관련 기본계획이 전무한 상태다.

도내 발달장애인의 복지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기본 조사도 미흡하다. 현재까지 이들의 생활실태와 욕구를 조사·연구한 것은 지난해 한국장애인개발원 제주도발달장애인지원센터가 시행한 게 거의 유일하다. 제주도 조례에도 발달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한 '충분한 수준'의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명시돼 있지만 지자체 차원의 조사는 없었다. 발달장애인의 욕구에 맞는 정책 수립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제주연구원 제주사회복지연구센터는 제주도의 의뢰를 받아 도내 발달장애인과 그 부모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 사진은 서귀포시 지역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과의 집단심층면접. 사진=제주사회복지연구센터

|제주도, 실태조사 착수… 올해 연말까지 계획 수립

뒤늦게나마 제주자치도가 발달장애인 지원계획 수립에 나섰다. 이를 위해 올해 제주연구원 제주사회복지연구센터에 의뢰해 도내 발달장애인과 보호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현재 연구진은 설문조사와 집단심층면접(FGI, 포커스그룹인터뷰) 등을 마무리하고 그 결과를 분석해 추진 목표와 정책 과제를 설정하고 있다.

연구진은 영유아기부터 학령기, 청년기, 장년기 이상, 생애 전반까지 크게 다섯 가지 생애주기별로 지원이 필요한 사업을 발굴해 기본계획에 반영한다는 구상이다. 제주도가 올 연말까지 확정하는 기본계획은 모두 5개년 계획으로, 이에 따른 연차별 계획도 세워지게 된다.

연구책임자인 오윤정 제주사회복지연구센터 전문연구위원은 "발달장애인 생애주기 서비스의 우선 순위를 조사해 보니 영유아기는 조기 진단 체계와 치료 여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고 성인기 이후에는 시설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등의 의견이 나왔다"며 "이처럼 실태조사를 통해 파악한 욕구를 반영한 신규 사업 발굴도 계획하고 있다. 제주도와 행정시가 함께 참여하는 공공 워크숍 등을 통해 자세히 논의될 것"이라고 했다.

|생애주기 맞춤 지원 위한 사업 추진 등 제주도 의지 관건

제주도 차원의 발달장애인 기본계획 수립은 정책 추진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역사회 안에서 돌봄 체계를 갖추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오 전문연구위원은 "제주시는 장애인(발달장애·뇌병변), 서귀포시는 노인을 대상으로 진행해 온 커뮤니티케어(지역사회 통합돌봄)가 올해 말로 종료된다"며 "이러한 시범사업과 달리 조례 등에 근거한 기본계획은 제주 전체를 포괄할 수 있고 단기적이 아닌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지역에서 돌봄 체계를 갖추는 첫 단계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의미를 살리기 위해선 제주도의 추진 의지가 관건이다. 기본계획에 따른 신규 사업 등을 추진할 예산 확보도 뒷받침돼야 한다. 이제 시작이다.

지난 8월 종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마지막 회 장면. 자폐증 장애를 가진 우영우는 비장애인이 쉽게 지나갈 수 있는 회전문을 통과하지 못해 주저하지만, 드라마 마지막 회에선 이 문을 스스로 통과해 들어간다. 사진=채널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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