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기획
[우리, 여기 있어요] (5)유기견의 역습 ①
들개로 돌아오는 유기견… “서둘러 해법 찾기 나서야”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22. 08.08. 00:00:00
[한라일보] "아침에 일어나 밭에 가 보니 키우던 흑염소가 모두 죽어 있었어요." 지난달 5일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사는 고모(63)씨는 깜짝 놀랐다. 울타리에 그물망까지 치고 키우던 흑염소가 한꺼번에 죽어 있었던 것. 올해 새로 태어난 새끼 두 마리에 모두 여섯 마리를 잃었다.

고씨는 "개 두 마리가 울타리 안에 들어가 흑염소를 물어 놓고는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다"며 "구좌파출소에 신고하니 119와 제주시 유기동물구조팀 등이 와서 포획해 갔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포획된 개 두 마리는 목줄을 하고 있던 상태였다. 당시 출동했던 김동균 제주도자치경찰단 경사는 "마을이장이나 주민들 얘기를 들어보니 '마을에선 보지 못한 개'라고 하더라"며 "유기됐거나 (집에서 키우던 개가) 그런 상태로 돌다가 우리 안에 들어간 것 같다"고 했다.

지난 7월 5일 흑염소 6마리가 개에 물려 죽는 피해를 본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의 농가의 가축 우리. 출동한 119 대원이 피해 상황을 살피고 있다. 우리 안에 들어가 있는 개 두 마리는 목줄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사진=제주도자치경찰단

이 사건은 사람이 키우던 개가 그 손을 벗어나 발생하는 피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제주의 '들개'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들개가 떼로 다니며 가축을 공격하거나 사람을 위협하는 피해도 결국엔 '동물 유기'가 원인인 탓이다. 용어 자체에 논쟁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단법인 제주동물권행동NOW 조은지 팀장은 "들개도 유기견으로 보는 게 맞다"며 "결국엔 사람이 만든 문제이니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들개는 주인을 잃거나 버려져 산과 들에서 생활하고 번식하며 야생화된 개를 말한다. 사람들이 키우던 반려견이 유기견이 되고, 이들이 야생에 적응해 살아남으면 들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제주 중산간 들개 2100여 마리 서식 추정… "기하급수적 늘어날 수도"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도내 중산간(해발 300~600m 한정)에는 1626마리에서 2168마리의 들개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도가 지난해 발표한 '중산간지역 야생화된 들개 서식 실태조사 및 관리방안' 연구용역 최종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연구진은 들개로 인한 노루 피해 건수와 피해 지역, 포획 이후 제주동물보호센터에 입소한 유기견의 연령, 암수, 포획 위치 등의 기본 정보로 이같이 추정해 냈다.

하지만 꾸준히 번식 활동을 하는 동물의 특성상 이 수는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용역 책임자인 윤영민(제주야생동물구조센터장) 제주대학교 수의학과 교수는 "개는 일년에 두 번, 한 번 새끼를 낳을 때 적게는 두 세 마리에서 최대 10마리까지 낳는다"며 "환경에 따라 산자 수를 조절하긴 하지만 이러한 다산 조건에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 전역에서 발견되는 유기견(떠돌이개). 사람들이 키우던 반려견이 유기견이 되고, 유기견이 들개가 되는 악순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진= 제주시유기동물구조팀

농가 가축·야생동물 등 피해에
집단성 강해 인명 피해도 우려
‘유기견→들개’ 악순환 끊어야

들개 개체 수 증가가 우려되는 건 그로 인한 피해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제주에는 들개로 인한 피해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도내 농가에서 키우는 가축 피해가 대표적이다. 제주도로부터 받은 '들개로 인한 도내 가축 피해 현황' 자료를 보면 2018년 13건에서 2019년 14건, 2020년 18건, 2021년 25건으로 점점 늘고 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따르면 6월말 기준 올해 두 지역에선 18건(제주시 11건, 서귀포시 7건)의 피해가 추가로 발생했다. 대개 닭과 오골계, 염소 등이 들개에 물려 폐사한 경우다. 한 예로 지난 4월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의 한 청계 농가에선 닭 8마리가 죽고 4마리가 실종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곳에선 같은 달 19일에서 22일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들개가 농가 축사의 그물망을 뜯고 들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노루 등 야생동물의 피해도 잇따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라산 유해조수포획단 현상훈 씨는 "한라산 안에서도 들개가 노루를 쫓아가는 걸 몇 번이나 봤다"며 "가장 최근(7월 중순)에는 한라생태숲 남쪽 길에서 들개에 물려 죽은 노루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장호진 야생생물관리협회 제주도지부 사무국장도 "노루 등 야생동물의 로드킬 조사 사례를 보면 자동차가 아닌 개에 물려 폐사한 경우가 확인되고 있다"면서 "최근 들어선 들개 수도 늘고 3~4마리 정도 무리를 지어 다니는 집단성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들개에 물려 폐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노루 사체. 사진=야생생물관리협회 제주도지부



들개로 인한 인명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제주 중산간 마을인 어음1리 강안민 이장은 "마을 축협 공판장 위쪽으로 들개가 무리 지어 다니다 보니 그 길로 다니기가 무섭다는 주민들 민원이 있다"며 "포획팀에 신고를 해도 잡기가 어려워 언젠가 사고가 나진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유기견에서 들개로 이어지는 문제를 서둘러 고민하지 않으면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 그 해법을 놓고는 시각차가 크지만 두 문제를 따로 떼놓고 볼 수 없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윤영민 교수는 "현재 있는 들개만 포획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며 "들개는 결국 마당개나 시골개처럼 사람들이 키우던 개들이 야생화된 것이기 때문에 유기견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관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