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사는 여자 중학생들의 일상을 아프지만 담담하게 그린 '달려라, 요망지게!' 일러스트.

제주시 원도심 골목 등 배경
꿈 없기에 노력할 것도 없던

육상부 중학생들의 성장기

아동문학 창작에 비해 청소년문학 토양이 척박한 게 제주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근래 고향 제주에서 그림책 강의 등을 하고 있는 곽영미 작가의 '달려라, 요망지게!'에 눈길이 간다. '요망지다'(미련하지 아니하고 영리하고 똑똑하다)란 제주 방언을 표제로 내건 이 작품은 육상과 농구를 했던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응원하고 있다.

소설은 다끄네 마을에서 동문시장 분식집까지 제주 바다와 제주시 원도심 골목을 배경으로 했다. 그 공간을 누비며 서로에게 '별'이 되었던 여자 중학생들의 성장기가 아프지만 담담하게 그려졌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농구부였던 경미, 진영, 보미, 연희, 미란은 용담동에 사는 친구들이다. 이들은 중학교 3학년으로 향하는 개학 직전에 육상부 활동을 통보받는다. 전도체전을 앞두고 육상 훈련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의 혼란스러운 모습 속에 저마다 감춰뒀던 사연들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진영처럼 깊은 상처에 제주를 떠나고 싶은 아이들에겐 제주 바다가 '감옥'이었다.

"나는 딱히 공부도 운동도 열심히 하고 싶지 않았다. 농구 선수가 되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육상 선수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 아이들과 영원히 어울려 놀고 싶을 뿐이었다." 경미의 마음처럼 꿈이 없었기에 노력할 것도 없는 친구들이었지만 달리기는 차츰 그들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줬다.

소설 속 중학생들은 "뭐 하멘?" 등 제주 방언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며 현실감을 준다. 날개 달린 아기장수 설화, 이어도 전설, 삼성신화 등 곳곳에 제주 문화의 속살로 안내하는 장치도 입혔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섬의 문화가 할머니에게 어머니로, 다시 딸에게로 그렇게 전승되고 있다.

작가는 제주로 돌아왔을 때 예전 초등학교 건물, 밤새워 놀았던 독서실, 잡지를 보러 다녔던 서점, 친구들과 떠들고 걷던 좁은 골목길 등 그 많은 것들이 그대로 있어서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것들이 빛나던 순간을 기억하도록 했기에 이 작품도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숨쉬는책공장.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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